최근 원·달러 환율이 1달러당 1,500원을 넘어 1,550원대까지 무서운 기세로 치솟았다. 외환시장 야간거래에서는 장중 1,560원을 돌파하며 금융위기 시절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인천공항 환전소 전광판에는 지난 8일 ‘1달러=1,619원’이라는 공포스러운 숫자가 찍히기도 했다. 이 같은 환율 상승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약 28년 만에 마주하는 가장 위태로운 수준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우려가 극에 달하고 있다.
환율은 한 나라 화폐의 대외적 가치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다는 것은 달러 가치는 급등하고 원화 가치는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뜻이다. 이제 주말 가족 외식 가격이 뛰고, 출퇴근길 주유소의 기름값 앞자리가 바뀌었다는 실감한다. 당장 해외에 자녀를 유학 보낸 부모들은 ‘달러당 1,600원 송금’이라는 현실 앞에 한숨을 쉬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환율 상승은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수많은 제품의 원재료인 원유, 천연가스, 곡물이 모두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고환율은 곧 민생을 위협하는 거대한 쓰나미와 같다.
대한민국은 전형적인 무역 의존 국가다. 수출로 달러를 벌어 성장하고, 수입을 통해 에너지와 자원을 조달한다. 따라서 환율의 급등은 경제 전반의 실핏줄을 즉각적으로 압박한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가격이 폭등하고 기업의 생산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한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장바구니 물가 폭등으로 이어진다. 대기업보다 기초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밀려드는 원자재 대금 고지서 앞에 도산 위기를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생활비 부담이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는 이유다.
물론 과거에는 환율 상승이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수출기업들이 같은 달러를 벌어도 원화로 환산한 이익이 늘어나 정부가 수출 중심 성장 전략을 펼치던 시절에는 고환율을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 생태계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중동 전쟁의 장기화와 미국의 관세 폭탄 우려로 세계 경기 자체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환율이 오른다고 해서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다. 오히려 비싸진 원자재 수입 비용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외화 부채 금융비용의 고통이 수출 보너스보다 훨씬 더 크게 기업의 목을 조르고 있다.
특히 최근 시장을 지배하는 진짜 공포는 환율의 ‘높이’보다 ‘변동성’이다. 올해 들어 환율은 하루에도 수십 원씩 롤러코스터를 타며 시장 참여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내일의 환율을 예측할 수 없으니 기업들은 수출입 계약서 도장을 찍지 못하고, 대규모 투자 계획은 전면 보류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경제는 예측 가능성이라는 단단한 땅 위에서 움직이는데, 환율이 이토록 거칠게 흔들리니 금융시장과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당국의 구두 개입마저 시장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금의 환율 급등은 미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라는 거시적 배경 뒤에, 지정학적 리스크와 외국인 주식 매도세가 얽힌 복합 고차방정식이다. 달러는 세계가 불안할 때 가장 먼저 찾는 대피소이기에 강세를 띤다지만, 유독 원화의 낙폭이 두드러진다는 점은 뼈아프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글로벌 자금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민생을 구제할 외환·물가 대책에는 눈을 감은 채, 진흙탕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개탄스러운 노릇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경제는 수많은 외풍을 맞으며 성장했다. 1997년의 외환위기도,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결국은 이겨냈다. 그러나 우리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근거 없는 ‘막연한 낙관’이나 공포에 질린 ‘무조건적 비관’이 아니라, 현실을 송곳처럼 직시하는 냉철함이었다. 지금의 환율 급등을 일시적인 대외 소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 경제 구조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외환시장의 엄중한 경고음으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환율은 시장이 국가 경제에 내리는 냉혹한 평가서다. 숫자가 1,500원을 넘어섰다는 현상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경고하는 이면의 위기를 간파하는 일이다. 위기는 언제나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재앙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대비하는 사회에게는 체질을 바꿀 기회가 된다. 정부는 어설픈 개입 대신 실효성 있는 외환 방어벽을 짜야 하고, 기업은 리스크 관리를 체계화해야 하며, 가계는 재정 건전성을 단단히 다져야 한다. 오늘의 환율은 우리에게 경제의 기초 체력을 전면 재점검하라고 엄중히 다그치고 있다. 이 경고를 외면하고 공멸할 것인지, 도약의 계기로 삼을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
글쓴이=시사뉴스 박성태 대기자

배재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졸업 행정학 박사
전 파이낸셜뉴스 편집국 국장
전 한국대학신문 대표이사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