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보수에서 온건 개방으로

2002.10.01 00:10:10

강경 보수에서 온건 개방으로


김일성 사후 사라진 실용주의 다시 살아나



한이 마침내 개방의 문을 여는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가 연결되고
도로가 가설된다. 대규모 북한 선수단의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석하고 금강산 육로 관광길이 열리게 됐다. 그리고 북·일 정상회담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6월 서해교전 이후 두달 사이에 상상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경제기술관료들의 약진

북한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남한과의 화해 분위기와 한반도 주변 4강(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에 대한 외교노선의 변화는 내부 권력구도에
커다란 움직임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같은 지적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권력구도의 변화가 대외정책의 변화를 이끌어온 북한 사정을 감안해
볼 때 설득력이 매우 높아 보인다.

남북관계가 안정적 화해ㆍ협력구도로 정착되고, 일본과의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것은 북한 내부 권력이 강경 보수에서 온건 개방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관측하고 있다.

실제 북한 내각에서 홍성남 총리, 조창덕ㆍ곽범기 부총리, 박남기 국가계획위원회위원장, 김용삼 철도상, 이광근 무역상, 문일봉 재정상 등
90년대부터 개혁·개방을 주도해 온 실용주의 경제기술관료들의 발언권이 높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구기관들도 지난 7월초부터 추진중인
경제개혁을 이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군부도 안보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에서 열린 경추위 2차회의 때 그토록 꺼려하던 남북한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군사적 보장각서 발효에 대해 군부가 동의해 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김 위원장의 선택

1980년대 말 이후 북한 정권 안에서는 개혁·개방을 주도하는 실용주의 세력과 체제유지를 우선시하는 군부 중심 보수세력간 권력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전인 1990년대 초반에는 연형묵 당시 총리 등 실용주의 세력이 득세했으나 김 주석 사망 후 김정일 위원장의
이른바 ‘선군정치’ 선언한 이후 군부세력 쪽으로 권력이동이 이뤄졌다.

이는 김 위원장이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 경제난 등에 따른 북한 사회주의 체제 위기가 심화되자 군부대 방문 등 활발한 대군 활동을
통해 군부의 절대충성을 유도하면서 군을 체제보위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998년 김 위원장의 중국 경제시찰 방문을 기점으로 다시 북한 권력은 실용주의 기술관료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때가 바로 김 위원장이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실용주의자의 손을 들어주고 경제체제의 개혁을 내세워 대외 평화노선을 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정일과 강성대국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은 ‘사회주의 강성대국’으로서 다분히 이념성이 짙은 북한의 건국 강령이다. 김정일이 밝혔다는 북한의
강성대국의 정의는

‘① 국력이 강하고

② 모든 것이 흥하며

③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사는 나라.



북한에서 강성대국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 7월 22일 ‘로동신문’ 사설 ‘위대한 당의 령도에 따라 사회주의
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키자’에서 ‘주체의 강성대국’이란 용어가 나왔다. 그후 1998년 8월 22일자 로동신문 정론 ‘강성대국’에서부터
본격 이 말이언급되기 시작했다. 1998년 9월 5일 북한이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하고 김정일시대의 개막에 즈음해 제시한
통치선전 구호가 강성대국이다.

이후 북한은 강성대국 건설을 재차 강조했다. 최근까지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 건설과 관련한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① 우선 강성대국은 정치ㆍ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을 목표로 하되, 정치ㆍ사상강국을 건설한 위력을 바탕으로 경제를 건설하겠다는
것. 그러면서 북한은 이미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영활한 영도로 정치강국, 사상강국, 군사강국을 이루었으므로 경제강국도
곧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② 강성대국건설은 수령 결사옹호정신을 근본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전 인민은 김정일을 눈동자 처럼 지키기 위해 ‘총폭탄정신’,
‘자폭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한다.



③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서는 당ㆍ군ㆍ민이 일심단결하고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④ 제2의 천리마 운동을 전개해 경제를 부흥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6ㆍ25직후에 시작된 천리마운동 등 노력경쟁 운동으로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국가를 건설했듯이 다시 한 번 국가재건을 위해 천리마운동식의 노동력 투입방식으로 경제 회복을 기도하고 있다.

결국 강성대국은 김정일 통치시대를 상징하는 북한의 전략목표다.




김 위원장의 통일정책


북한은 1960년 통일의 과도적 조치로서의 연방제를 제안한 이래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방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 동안
북한의 연방제안은 통일의 ‘과도적 조치’로서의 연방제로부터 통일의 ‘최종목표’로서의 연방제로 성격이 변했다. 연방제 자체가 김일성의
통일유훈이라는 점과 통일당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체제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는 점에서 다른 형식의 통일방안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의 통일정책 변화와 관련해 필수적인 쟁점은 연방제 통일전략이 체제수호적 공존통일전략인가 아니면 남조선혁명을 위한 통일전선전략인가의
문제다.

그러나 북한의 통일정책은 항상 남한의 정치상황에 의해 조건지어졌다. 통일문제를 둘러싼 남한 내 이론 양극화 현상은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정권유지를 위한 정치적 정략에서 비롯됐다고 지적되고 있다.

경남대 이수훈 교수에 따르면 ‘북한이 내세우는 통일논리와 정책에 남한사회가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북한의 통일전략은 혁명전략에서
공존전략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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