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송경호 기자] 4월은 청춘의 달이다. 3월이 막 시작하는 학생의 설렘을 담는다면, 5월은 완숙한 청년의 푸름을 간직한다.
그 사이 낀 4월은 기대감과 불안감이 공존한다. 청춘의 속성이다. 벚꽃의 화려함이 절정에 달하지만, 그 '화양연화'(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가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불안의 정서가 어느덧 아른거린다.
힙합그룹 '방탄소년단'이 8개월 만에 발표한 미니앨범 '화양연화 pt.1'은 그렇게 청춘에 가닿는다. 지난해 '학교 3부작'을 마무리한 뒤 이제 청춘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최근 충무로에서 만난 방탄소년단의 리더 랩몬스터는 "청춘,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어도 잘 모를 것"이라면서도 "청춘이 그래도 거창한 것은 아니잖아요. 엄청난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기 보다 바로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눈을 빛냈다.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가 작곡가 슬로래빗과 함께 프로듀싱한 인트로 '화양연화'부터 청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세상이 낯선 소년들이 겪는 혼란과 고민을 담았다. 슈가는 취미인 농구를 가사의 소재로 활용했다. 농구공 튀는 소리와 코트를 달리는 소리, 숨소리 등을 리듬으로 구성했다.
슈가가 자신 인생의 책으로 꼽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만화 '슬램덩크'를 떠올리면서 만들었다. 청춘의 열정을 담은 이 만화 역시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를 그린다.
슈가는 "학창시절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그 때 농구를 하면서 여러 생각을 했죠. 그런 흔적을 담았어요"라고 소개했다. "청춘이라는 것이 화려하지만 어두운 면도 있잖아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기도 하고. 제 모습이 담긴 트랙이에요. 10~20대에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미래의 불안감'을 앨범 전체에 담고자 했죠."
진·제이홉·지민·정국·뷔 역시 "청춘이 뜨겁고 아름답고 활활 타오르는 순간"이지만 "불안함도 녹아들어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타이틀곡은 랩몬스터와 슈가 등이 함께 작업한 일렉트로 힙합곡 '아이 니드 유'다. 꺼져가는 사랑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가는 남자의 심정을 담았다. 전체 앨범 콘셉트가 투영된 곡으로 '달콤하지만 너무 아픈 청춘'을 그린다. 기존 강렬한 힙합 곡들보다 한결 편안하다.
수많은 사람이 작업을 해 크레디트를 걸러내는 것만으로도 일이었다는 랩몬스터는 "아름다움보다는 불안함을 떠올리면서 만든 곡"이라고 소개했다.
뷔가 처음 작사·작곡에 참여한 '잡아줘'는 지난해 방탄소년단의 히트곡인 '상남자'의 연장선상의 곡으로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이다. '스킷(Skit)' 트랙은 멤버들이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나눈 대화를 그대로 실었다. 역시 "기대와 청춘이 섞여 있다"고 멤버들은 입을 모았다.
방탄소년단의 '스웨그(swag·힙합 뮤지션이 잘난 척을 하거나 으스댈 때를 가리키는 용어)'가 느껴지는 '쩔어', 멤버들이 각자 파트를 직접 만든 '흥탄소년단', 랩몬스터가 애정을 품고 있는 컨버스 하이(뒷굽이 높은 컨버스 운동화)에 대해 노래한 R&B '컨버스 하이(Converse High)'(이미 방탄소년단 팬들 사이에는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로 랩몬스터는 이 곡을 끝으로 컨버스 하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등이 앨범에 실렸다.
눈에 띄는 트랙 중 하나는 '이사'. 설렘과 불안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소재라는 점에서 '청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러브 레터'로 유명한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청춘 영화 '4월 이야기'(2000)가 떠올랐다. 일본 도쿄 근교에 위치한 대학으로 진학을 결심한, 홋카이도에 사는 '우즈키'(마츠 다카코)의 이야기로 그녀의 대학생활을 그린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벚꽃이 화면 가득 흩날리는 장면은 방탄소년단의 이번 앨범과 겹쳐진다.
스무살 안팎의 멤버들은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랩몬스터는 "항상 같은 세대에게 필요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고, 나머지 멤버들 역시 '4월 이야기'의 정서를 가져오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해는 방탄소년단에게 '화양연화'의 조짐이 보인 때였다. 8월 첫 정규앨범을 발매했고 10월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으며 '상남자'로 1위 후보에도 올랐다. 하지만 2013년 데뷔한 이 팀은 내공과 기대에 비해 아직까지 '큰 한방'은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멤버들도 이를 인정했다. 아마 아이돌 그룹으로는 이례적으로 힙합에 기반한 점이 큰 이유일 테다. 막연하게 대중성을 좇기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있다. 슈가는 "(인기는)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음악으로 결국 승부를 보는 게 정공법이죠"라고 눈을 빛냈다.
힙합이라는 카테고리에만 치우쳐 방탄소년단을 아이돌 그룹에 불과하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랩몬스터는 "나름의 우리 음악을 만들어가겠다"면서 "대신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눈을 반짝였다. 슈가는 "우리가 억지로 힙합 그룹이라고 떼쓰고 싶지는 않아요. 100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지금은 마음에 안 들어하실 지 모르지만 결국 음악으로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 저희 몫이니까요"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앨범이 방탄소년단의 본격적인 '화양연화'의 출발점이 될 거라는 기대는 있다. "청춘일 때 오히려 청춘인 지 모르잖아요. 훗날 이번 앨범을 계기로 화양연화가 시작했다고 돌아봤으면 해요."(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