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1960~80년대 서울은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근대화와 개발의 상징인 고가도로가 세워지고 완공 당시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이자 대한민국 마천루의 시작을 알린 종로 삼일빌딩이 건설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당시 시대상을 생생하게 포착
지금은 서울의 대표 번화가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강남과 잠실 일대는 이 당시엔 조용한 시골 동네였고, 뚝섬 강복판에 있는 빨래터에서는 동네 아낙들이 모여 한강물에 빨래를 하는, 지금 세대들은 상상하기 힘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청계천 복개’부터 ‘이산가족찾기운동’까지 1960~80년대 서울 곳곳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았던 평범한 서울사람들의 모습을 400여 점의 사진으로 만나보는 ‘홍순태 서울사진아카이브, 세 개의 방 展’이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과 로비에서 5월17일까지 개최된다. 입장료는 무료다.
원로 사진가 홍순태 작가(82세)는 1934년 서울 중구 중림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로, 1967년 제5회 ‘동아사진콘테스트’에서 ‘부조화’로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사진전에서 연속 입상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고, 1983년 이산가족찾기운동,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사진작가로 활약했다.
홍순태 작가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한 후 양정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하게 됐다. 1982년 신구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사진과 이론을 접목시킨 그의 작업영역은 더욱 확대됐으며, 2000년 교수 퇴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진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홍순태 작가가 지난 2013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서울사진 700여 장 중 1960년~80년대 당시 시대상을 생생하게 포착한 사진 400여 장을 엄선해 관람객들에게 소개한다.
사진 속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
전시는 1부 장소를 탐험하는 ‘서울을 걷다’, 인물을 탐구하는 2부 ‘길에서 만난 사람들’, 3부 ‘세 개의 방 展’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당시 한창이던 서울의 개발과 발전의 현장보다는 그 이면에서 소외됐던 판자촌, 개발 이전의 조용한 시골동네, 왁자지껄한 시장골목 등을 찾아 그 시절 서민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췄다. 2부는 작가가 만난 길거리 사람들을 집중 탐구하는 코너로 기획됐다. 작가가 수백 번 지나간 서울의 길에서 가장 평범한 순간을 포착해 찍은 사진 속 사람들은 마치 우리 이모나 삼촌처럼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바로 이 ‘익숙함’이 홍순태 작가의 사진이 가진 흡입력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3부 ‘세 개의 방 展’은 당시 주요 사건들을 포착한 ‘기록의 방’, 서울사람의 일상을 담은 ‘기억의 방’, 작가의 특별한 시선을 담은 ‘시선의 방’으로 구성된다.
우선, ‘기록의 방’에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의 변화를 당시의 신문기사와 작가가 찍은 사진을 교차해 보면서 현실의 기록과 작가의 시선을 대비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예컨대, 1969년 삼일고가도로 개통 당시 신문에서는 유연하고 거대한 구조물로 고가도로를 표현했다면, 작가는 고가도로와 철거민촌의 아이들을 대비시켜 개발의 명암을 한 번에 보여주고자 했다.
‘기억의 방’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땐 그랬지...’ 젊은 세대들은 ‘왜 그랬지?’를 자아내게 하는 1960~80년대 풍경을 모았다. 이렇듯 사진만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숨은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사진 속 사람들이 직접 한 이야기들을 글로 적어 사진과 함께 전시한다. 또, 관람객들은 사진 속 장면과 관련해서 내가 기억하는 내용을 적으며 전시에 함께 참여해볼 수도 있다.
‘시선의 방’ 관람객의 시선을 한정해서 작가가 사진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를 명확하게 찾아보는 전시다. 판잣집과 고급주택으로 대비되는 철거와 개발, 미니스커트를 젊은 여인과 수녀 등 조화되기 힘든 요소들의 대비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시대적 진실을 보는 계기
또, 연계전시로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당시 전쟁으로 흩어졌던 부모와 형제를 찾는 이산가족들의 애달픈 모습과 감격적인 만남의 순간을 홍순태 작가가 촬영한 70여 장의 사진으로 만나보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전도 함께 열린다.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은 1회 특집 방송으로 편성됐으나 이산가족에 대한 큰 관심으로 총 138일, 453시간 45분간 생방송으로 방영됐으며, 이 기간 중 홍순태 작가가 촬영한 사진들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홍순태 작가가 말한 “사진가 한 사람이 남긴 사진을 통해 시대적 진실을 보고 기억하길 원할 뿐이다”라는 글에서 나타나듯이, 이번 전시는 서울토박이인 작가가 담고자 했던 1960~80년대 시대적 진실과 서울의 단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