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해적판 천국’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 음반, 출판물 등 넘쳐… 차원 높은 문화의식 필요
만약 여러분이 가수인데, 자신의 팬이 해적판 CD를 들고 와 사인을 요구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한국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런 일들이 대만과 중국 등지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사실 독자들도 중국의 해적판 실태에 대해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중국의 지방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러 종류의 해적판을 접할 수 있다.
얼마 전 ‘중국어판 윈도우 XP’를 구입하러 일반 판매점에 갔는데 점원은 불법 복제한 해적판 윈도우를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왔다. 중국에서
해적판은 대외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중국 국내 문제이기도 하다.
모
도시가 불법 출판물의 집산 기지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 CD-ROM판은 97년에 발간될 예정이었으나 98년 말에야 완성되었다. 발간이 지연된 원인은 중국 내의 해적판
문제에 대한 대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 대만에서는 404운동이라 하여 해적판 CD제품 구매를 반대하는 운동이 있었다. 4월 4일
대만에서 일어난 이 시위에는, 홍콩과 대만의 내놓으라 하는 유명 가수들이 대거 모였다. 이날의 현장은 중국에서 방송되기도 했는데, 운동의
사회를 맡은 MC는 대만에서 발행되는 CD의 40%가 해적판임을 밝혀 대중을 놀라게 했다.
출판계의 사정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각 성(省)과 자치구마다 출판사가 지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인구수와 거의 맞먹는 사천성(四川省)에는
20개의 출판사가 있다. 예전부터 지역별로 책임을 지도록 규정되어 왔기 때문에 지역주의 의식이 강한데, 시장 경제를 도입한 현재도 지역주의
의식은 여전하다. 다른 자치성으로부터 서적 유입을 제한하는 움직임마저 있을 정도이다. 그 결과, 중국은 거대한 서적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이 몇몇 출판 시장으로 분할되어 있는 상태다.
‘중국 혁명사(中國革命史)’는 중국 내 출판사가 564개 사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200종 이상이나 각각 다른 출판사로부터 발행되었다.
중국 공산당 중앙 선전부원의 논문 ‘불법 출판물 유통에 대한 형사대책 방안’에 따르면, 불법 출판 활동이 합법적인 출판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파괴적이라고 한다. 지난 96년에는 불법 출판물 척결을 집중적으로 벌이는 과정에서 빈곤 지역인 모 도시가 ‘불법 출판물’의 집산 기지였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곳에서 제작된 불법 출판물은 다양한 유통망을 통해 광대한 중국 전역의 29개 성·시·자치구로 유통되었으며, 4,000∼5,000명의
농민이 제작 판매와 관련하여 실제로 거래량의 2배에 해당하는 연간 7천만 권 이상이 불법 유통되었다는 것이다.
WTO
가입 의식, 철저 단속 발표
그러나 출판물이기에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지 CD-ROM, CD, 카세트 테이프나 비디오테이프는 더 심각한 상태이다. 불법 출판물 척결의
집중 실시 결과, 불법 비디오나 카세트 테이프 등 648만개(외설 작품 18만 개 포함)이상, 불법 잡지와 서적 1,262만 부 이상이
적발되었다. ‘불법 출판물 유통에 대한 형사 대책 방안’에서는 전체에 차지하는 외설물의 비율은 매우 적으며, 살인이나 폭력예찬 및 봉건
미신과 중요 정치 문제와 저작권 침해 간행물이 절대 다수라고 밝히고 있다.
또 작년 12월 27일 션젼(深玔)에서 열린 중국 제 2차 불법 CD 밀수를 반대하는 좌담회에서는 2001년 한해 중국에서 불법 유통된
CD등의 음향 제품이 114억 여장이었음을 밝혔다. 또 중국 세관의 12월말 통계에 의하면, 작년 한해 밀수된 CD-ROM만 4조4억여장이었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불법 출판물 유통에 대하여 87년에 처음으로 ‘투기적 매매죄’(유기징역, 무기징역, 사형을 포함)를 적용하여 불법 출판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였다. 그 결과 불법 출판은 감소되었지만, 97년 3월에 ‘중화인민공화국 형법’이 입법되어 중벌 규정이었던 ‘투기적 매매죄’
적용 대신 행정 조치만으로 축소된 것이다.
또 작년 11월 WTO가입을 의식해 지난해 10월 18일을 시작으로 또다시 중국 문화부에서는 불법 CD-ROM 및 음향 제품 구매에 대해
철저히 단속할 것임을 발표했다. 해적판을 사는 것은 물건을 훔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하여 중국 국민들에게 해적판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하였다.
중국의 도덕 불감증이 근본적 원인
그렇다면 해적 출판물이나 CD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우선적으로 최근 인터넷에서 중국
네티즌을 상대로 한 ‘중국 내 소프트웨어 해적판 유통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중국 정부가 결정한 정품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수가 70%를 넘어 역시 가격에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정부의
해적판에 대한 단속이 소홀한 것 같다’고 대답한 자도 많았다. 그 외에도, 정품과 해적판의 질적 차이를 못 느끼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자도
다수였다.
13억 중국에 있어서 564개 사의 공식 출판사와 국가에서 인정한 1,240개 사의 잡지, 서적 인쇄 회사만으로는 광범위한 독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흥할 수 없다. 중국 공산당이 부패되었다고 느끼는 국민은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과거
하이난도(海南島) 동방시(東方市)의 당서기가 3,000만 위엔을 수뢰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은행 지점장인 그이 아내는 10년의 징형이
확정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관청에 등본을 떼러 가서도 ‘사례금’을 건네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실태와, 최근 베이징 왕푸징(王府井)에 공공연히 눈에 띄고 있는 창녀들에
대해서도 경찰이 묵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다. 손쉽게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서적
등을 적당히 무단 복제해도 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WTO 가입도 했으니, 지적 재산권 문제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해적판 CD나 출판물,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유통은 중국 정부의 골치
아픈 항목이 아닐 수 없다. 해적판 제품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부의 엄격한 단속도 중요하겠지만, 중국 국민들의 차원 높은 문화의식도 요구되는
바이다. 필자는 과연 중국에서 정품으로 된 장국영의 CD를 언제쯤 쉽게 구할 수 있을지 손꼽아 기다려진다.
E-mail:cloudia00@lycos.co.kr
조동은 <북경어언문화대학 이중언어학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