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O양 비디오’ 파동
몰래카메라를 비롯한 사생활 침해 심각
2000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O양 비디오 파동’과 흡사한 사건이 중국 사회에도 있었다. 2002년 새해를 보름 앞둔 지난
해 12월 17일, 대만 TV 아나운서 출신의 미혼 여성 정치인 취메이펑(美風·36)이 4세 연하의 유부남과 은밀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장면을 담은 VCD가 모 잡지사에 배포된 것이다.
이후, 문제의 장면이 담긴 VCD는 대만 및 중국 대륙의 인터넷까지 점령해 급속히 확산되어 현재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만은 물론, 중국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대륙 사람들 사이에서도 몰래 카메라의 유행이 일고 있다.
지리적 여건이 홍콩을 제외하고 대만과 가장 가까운 광동성(廣東省)에서 몰래 카메라가 극심하게 확산되고 있는 상태이다. 일반 적으로 몰래
카메라를 찍을 때 쓰이는 초소형 카메라의 구입은 중국에서 법적으로 금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규율이 무시되고 있는 지, 현재
중국 남부 지방에서는 초소형 카메라가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
배우자를 감시하려는 젊은 부부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으며, 그 밖에도 몰래 카메라를 즐기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이처럼 몰래 카메라의 기술이
남용되자, 사생활의 침해가 자연스럽게 문제로 떠올랐다.
법적 규정 없어 피해자 속출
실제로 얼마전 중국의 모 병원에서 환자가 주사 바늘 만한 초소형 카메라로 한 의사의 사생활을 카메라에 담아 비디오로 제작한 일이 있었다.
제작된 비디오는 곧바로 병원 내에 퍼져, 피해자는 난감함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지난 3월 5일 개막한 전국 인민 대표 대회(전인대)에서 모 광동성 대표는 몰래 촬영을 금지하는 입법안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 중국의 법조문에는 몰래 촬영이 위법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속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4월 1일 중국 최고 인민 법원에서는 ‘민사수송에 관한 몇몇 규정’으로 몰래카메라에 관한 조항을 발표했다. “사회 공중 도덕과 사회 이익,
타인 합법권익에 침해되지 않는 일반 금지성 규정이라면 상대방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녹음이나 비디오는 증거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로써 베이징 시내에 있는 민간 조사기관들은 몰래 카메라를 조사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
문제는 수많은 법률 전문가들이 이번 법 조항이 몰래 카메라 합법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해도, 여러 민간 조사기관들 사이에서 몰래
촬영의 이상 현상은 수그러들줄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 한 사람을 위한 종합 정보 조사’라는 광고 문구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민간
조사기관에서 광범위한 재산 조사를 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조사기관이 사인정탐소(흥신소나 사설탐정소, 심부름 센터쯤 된다)로 둔갑해 버린
셈이다.
처음 몰래 카메라가 남방을 중심으로 퍼졌다면, 사인정탐소는 베이징에서 중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혼외 불륜 조사로,
몰래 카메라와 함께 사생활 침해에 대한 긴장된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개인
뒷조사 50만원부터, 일주일 내 완성
이러한 민간 조사기관을 통해 배우자의 혼외 연애 여부를 가려내는 등 개인 뒷조사가 빈번하게 이루어져 중국에서는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민간 조사기관은 조사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며칠이 걸리든 하루 종일 해당자를 쫓아다니며 몰래 촬영이나 녹음 등을 서슴지 않는다.
또 채무 조사를 할 때에는 채무와 관련된 은행, 상공업계를 통해 해당자의 통장 계좌 번호를 알아내는 등 사생활 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이들 조사 기관은 제3자를 통해 조사 활동을 비밀리에 벌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베이징 시민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편
민간 조사기관은 제3자들에게 제때 수입을 지급하지 않는 등 내부 문제도 큰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 조사기관은 각종 초소형 카메라와 녹음기 등을 사용해 불륜관계에 관한 증거를 확보해 놓는다. 피해자나 의뢰자가 “몰래 카메라로 촬영한
것을 법원에서 증거물로 인정을 해주냐”는 질문을 던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당당히 대답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업체들은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공공연하게 광고를 내 보내고 있다. 처음엔 거리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공중파를
통해서도 이들의 광고를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다. 민간 조사기관에 의뢰자가 지급하는 조사비용은 인민폐 3000위엔(약 50만원)부터이며,
보통 일주일만에 임무를 완성해 내기 때문에 일반인들한테도 인기가 높다. 특히, 근래 신(新)혼인법이 발표됨에 따라(배우자의 잘못에 의해
이혼시 위자료 지급 사항이 생김) 혼외 불륜에 관한 조사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많아졌다.
사생활 보호, 정부가 나설 때
사실, 베이징에 이런 조사 기관들이 생겨나기 전, 중국의 난징(南京), 청두(成都), 우한(武漢) 등지에서는 이미 사인정탐소로 둔갑한 몇몇
민간 조사단체들이 있었다. 이들 단체가 부녀자를 간통하는 등의 사기극 사건을 일으키자, 지역 사회에 사인정탐소의 합법성과 필요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제가 이제는 수도인 베이징으로 번져 정부 쪽에서도 관망하고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공안부에서는 1993년 이미 ‘사인정탐소 성질의
민간 단체 설립에 관한 통지’를 발부한 바 있는데, 통지된 규정에는 “개인이든 단체든 공공업체가 아닌, 민간인이 설립한 조사 기관에서 하는
각종 형식의 민사(民事)나 안전 사물 조사 행위를 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법으로까지 승화되지 못해, 지난해 초 절강성(浙江省)에서
열린 이와 관련된 토론회에서 70%에 가까운 전문가들이 불만을 표시했다.
광동성에서 부는 몰래 카메라 붐과 이미 일부 남서부 지방에서 문제가 된 사인정탐소의 사기극 등, 이제는 베이징으로 사생활 침해의 무대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중국에서도 빠른 시일 안에 사생활을 보호하는 법률 규정을 제정해야 할 것 같다.
E-mail:cloudia00@lycos.co.kr
조동은 <북경어언문화대학 이중언어학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