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댄서’ ‘도그빌’로 거장의 칭호를 얻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 이후 차기작이다. 미국 남부 마을의 ‘흑인노예제도’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억압과 자유의 일면과 그 이면에 나타나는 논쟁점을 꼬집은 ‘만덜레이’는 ‘도그빌’과 마찬가지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신선한 영상과 날카로운 스토리 라인으로 극찬을 받았다.
도그빌에서의 끔찍한 기억을 뒤로하고 길을 떠나온 그레이스와 그녀의 아버지. 그들은 어느 날 미국 남부 깊숙한 오지마을 만덜레이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이미 오래 전 폐지된 노예제도의 굴레에 묶여 백인 주인에게 예속된 한 무리의 흑인들을 보게 되는 그레이스. 그녀는 마을의 변화를 위해 그곳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레이스의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비웃듯 떠나버린다. 만덜레이에 남아 흑인 무리들 스스로 자신이 노예가 아님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레이스. 하지만 그녀의 노력과 함께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의 기운은 만덜레이 마을에 생각지 못한 어두움을 몰고 온다.
‘도그빌’을 떠나온 그레이스는 70년 전 사라져버린 노예제도가 여전히 남아있는 ‘만덜레이’에 도착하면서 자유의 방만과 그에 따른 오해와 폭력, 오만과 죄의식이 뒤섞인 사건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감독은 전작에서 신랄하게 보여주었던 ‘휴머니즘’에 대한 냉정한 진실을 이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이어간다. ‘만덜레이’는 미국의 남부에 위치한 오지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나 단순히 미국 내에서 보여 지는 인종차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로 인한 억압의 책임은 의심할 여지없이 백인들에게 있다. 하지만 노예들에게 자유가 주어진 후, 그들에게 열려있는 여러 가지 선택의 문제에서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한다. ‘자유’와 ‘속박’은 결국 강요가 아닌 선택으로 결정되고 그 선택의 과정에서 옳은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는 동등한 사회가 형성되어 있느냐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도그빌’에서 선보였던 분필로 그려진 상상의 무대는 ‘만덜레이’에서도 어김없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도그빌’을 통해 새롭게 시도된 이 무대 형식은 복잡한 세트를 심플하게 만들면서 관객들이 캐릭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간결화된 배경은 관객들에게 오히려 더욱 큰 상상력을 안겨주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특히 ‘만덜레이’의 무대는 ‘도그빌’에서의 무대에 비해 두 배쯤은 더 넓어지고 전면에 커다란 저택이 놓여 거대한 무대로 재탄생 됐다. 인공적인 마을과 농장은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영화 전반에 깔아주게 되고 탄탄한 스토리의 힘에 매혹적인 장치의 힘을 더하게 되어 영화의 성공적인 완성을 이끌어낸다.
배우들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그레이스 역은 ‘도그빌’의 니콜 키드먼에 이어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목 받고 있는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맡아 열연을 펼쳤다. ‘뷰티풀 마인드’의 감독 론 하워드의 딸이기도 한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오직 그녀만의 그레이스를 만들어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존심 강한 1등급 노예인 티코시 역에 ‘커피와 담배’ 등을 통해 연기파 배우로 익숙한 이삭 드 번콜이, 무자비한 갱스터지만 딸에게만은 약한 그레이스의 아버지 역으로 윌렘 데포가 등장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연극배우 출신의 조연들이 캐릭터에 생기를 부여한다.
정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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