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할 때 우연히 촬영된 동영상이 사건 직후 치열한 경쟁 속에 엄청난 가격에 팔린 사실이 11일 확인됐다. 또한 문제의 동영상엔 저격 순간과 안중근 의사의 체포 장면은 물론, 열차 안에서 죽어가는 이토의 모습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의 영자신문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1909년 12월22일자 3면에 보도한 ‘이토 저격 필름 가격 신기록’ 기사에서 “문제의 동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복수의 구매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한 일본인이 무려 1만5000엔을 지불하고 구입에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1만5000엔은 요즘 화폐 가치로 2억원에 달한다.
저격 동영상은 지난 7일 뉴시스 ‘안중근 순국 104주기’ 기획시리즈를 통해 1910년 8월 공개 상영을 위해 미국에 필름 두 세트가 도착한 사실이 처음 알려지면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이토 백작이 러시아 코콥초프 재무장관과의 회담이 예정된 하얼빈역에서 러시아의 영화 기사가 저격 순간을 촬영했다”면서 “필름을 확보하기 위해 아주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결국 재팬프레스 에이전시에 근무하는 다노모기 게이이치가 1만5000엔에 구입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러한 가격은 영화 필름 사상 전례 없는 최고가로 필름의 길이는 500피트(약 10분 길이) 정도”라고 소개했다. 이어 “동영상엔 이토가 하얼빈역에 도착하는 모습과 플랫폼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 장면, 저격 순간과 체포, 열차에 후송된 이토가 죽어가는 장면들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보도는 문제의 동영상이 오늘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음을 말해준다. 2010년 ‘안중근 의사 저격 동영상’의 행방을 취재한 KBS 역사스페셜에 따르면 하얼빈의 가와카미 총영사는 저격 이튿날인 1909년 10월27일 본국에 긴급 전문을 보내 “러시아 기사가 촬영한 활동사진(동영상)을 구입해야 할 것인지 알려달라”고 본국에 연락한 끝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훈령을 받았다.
당시 여러 신문들이 “동영상 자료가 안중근 의사 재판에 활용될 것”이라는 보도한 가운데 두 달 후 일본의 민간업체가 엄청난 고가에 구입한 배경이 궁금증을 낳고 있다. 당시 저격은 안중근 의사가 사살했음을 스스로 밝히고 다수의 목격자도 있는 만큼 굳이 동영상을 증거 자료로 채택할 필요성은 없었다.
재팬프레스 에이전시가 일본 정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름을 구입한 다노마기는 훗날 일본 중의원을 지냈다. 일본 최고의 정치인의 저격 순간을 담은 유일한 동영상을 일본 정부가 방치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에서 민간업체를 통해 필름을 구입,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을 개연성이 제기된다. 경성신문 1월9일자엔 동영상이 1월 초 일본에 도착했으며 이토 가문이 먼저 관람하고 나서 일반에 공개된다는 내용이 있다.
또 2월1일 호치신문은 도쿄에 새로 문을 연 2만 명 수용의 국기관(스모경기장)에서 1일부터 6일 간 특별상영한다는 광고를 실었고 상영 기간 중에도 광고를 계속해 눈길을 끌었다. 결국 일개 민간업자가 이익 창출을 위해 나섰다기보다는 재판을 앞두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일본 정부의 방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영화 상영 직후인 2월14일 사형이 선고됐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영화 상영 당시 저격 순간을 촬영한 러시아기사 코브지에프가 첫날 초청돼 대중들에게 자신이 목격한 장면들을 관객들에게 설명한 사실이다. 경성신문은 1910년 2월13일 보도에서 “기차가 진입한후 키가 큰 (러시아)장관이 기다리는 쪽으로 이토가 왔다. 군악대의 연주 속에 이토가 세 걸음을 걷고 환영하는 시민 대표자와 악수를 했다. 순간 폭죽같은 소리가 났다. 군악대 연주가 멈추고 대혼란이 일어났다. 러시아 사관들이 안중근의 팔을 잡았다…”는 코브지에프의 생생한 목격담을 전했다.
저격 동영상은 그해 여름 미국에 두 세트가 도착해 일부 지역에서 상영된 것으로 뉴욕 타임스가 8월14일 보도했으나 필름이 원본인지, 임대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1941년 아사히신문사가 제작한 다큐 필름 ‘약진의 흔적’에 저격 장면이 제외된 앞뒤 40초 분량이 편집 공개됐으며 1995년 NHK가 이중 30초 분량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저격 순간을 담은 원본 동영상의 소재는 현재까지 미궁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