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전 세계는 '폭염에 포위된 여름'을 통과하고 있다. 국내 상황은 심각함으로 따지자면 전례가 없을 정도다. 서울에 중대폭염재난경보가 발효되는 등 38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이어졌고, 경남 양산에서는 42.5도라는 대한민국 근대 기상관측 역사상(1904년 이후 122년 만에 처음으로 42도를 돌파)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양산을 포함한 영남 일대는 닷새 연속 40도를 웃도는 극한의 열기에 신음했다. 서울도 40도를 넘겼다.
시선을 바다 건너로 돌려보면, 미국 역시 거대한 열의 공습에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6월 말 동부를 덮친 열돔(heat dome)으로 시작해 7월과 8월에 이른 지금까지 열돔이 대륙을 순회하듯 이동 중이다.
미국 국립기상청(NWS)이 한때 약 1억 8천만 명을 극한 폭염 경보 아래 뒀으며,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가 섭씨 46.1도(화씨 115도), 애리조나주 피닉스와 캘리포니아주 엘센트로는 섭씨 47.2도(화씨 117도)를 기록하는 등 서부 전역이 펄펄 끓었다.
특히 달궈진 대기와 극심한 건조함이 겹쳐 워싱턴주 등지에서는 대형 산불이 발생해 수천 가구가 대피하는 등 재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런데 올여름 뜨거워진 것은 지구만이 아니다. 지구 상의 또 하나의 열이 훨씬 빠른 속도로 끓어오르고 있어서다. 바로 인공지능(AI) 시대의 심장부인 데이터센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6년 기준 약 400,450TWh 규모에서 2030년에는 8,001,000TWh 수준으로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TWH:테라와트시, 1TWH= 한국의 약 15시간 동안의 소비전력 )
놀라운 것은 이 전력의 상당 부분이 서버 구동 외에 발열을 제어하는 공조 시스템(냉방) 부하로 인해 전체 데이터센터 에너지의 30%에서 많게는 40% 이상까지 냉각에 소모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오해하기 쉬운 발열량의 거대한 도약이 발생한다. 과거 전통적인 서버 랙 한 대가 뿜어내던 발열량은 10~15kW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연산의 폭발과 함께 등장한 최신 AI 서버 랙은 무려 132kW를 넘나들고, 코앞으로 다가온 차세대 모델은 240kW를 바라보고 있다.
숫자를 비교해 보면 그 격차가 실감 난다. 과거에 서버 한 대를 식히던 1,015kW 수준의 열은 거대한 팬으로 바람을 일으켜 식히는 전통적인 공랭식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여 랙당 발열량이 50,100kW 구간을 넘어서는 순간, 공랭식은 냉각 성능의 한계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즉, 과거의 방식으로는 압도적인 열기를 더 이상 밖으로 빼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구의 폭염이 "자연을 어떻게 식힐까"라는 질문이라면, AI의 급성장은 "기계를 어떻게 식힐까"라는 공학적 과제를 던진다. 겉보기엔 전혀 다른 두 현상 같지만, 엔지니어와 정책 입안자의 눈으로 보면 정확히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된다.
바로 '원치 않는 열을, 어디로, 어떻게 버릴 것인가'이다.
일상과 첨단의 전선에서 마주한 냉각의 과제
이 거대한 열의 공습을 잠재우기 위해, 인류는 두 가지 전선에서 기술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첫 번째 전선은 일상적인 냉방의 혁신이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인 에어컨은 오늘날 전 세계 전력의 상당 부분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전력 하마'다. IEA에 따르면 현재 16억 대로 추산되는 전세계 에어컨은 2050년까지 56억 대로 불어나며 수요가 세 배로 폭증할 전망이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글로벌 냉난방 업계와 혁신 기업들은 전력 소비를 대폭 줄이는 복사냉각, 고효율 제습, 차세대 히트펌프 등 다양한 차세대 시스템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통적인 냉방 대기업부터 신생 스타트업까지 '열을 다스리는 효율적 플랫폼'으로 진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분기점에 직면해 있다.
두 번째 전선은 데이터센터의 '액랭(Liquid Cooling) 혁신'이다. 공랭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전 세계 엔지니어들은 물 대신 특수 유전체 액체나 고효율 냉각 모듈을 활용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서버 보드나 칩셋에 직접 냉각제를 밀착시켜 초고밀도 열을 제어하는 이 방식들은 단순한 장비 교체가 아니라, 랙당 200kW를 넘는 극심한 발열을 다스려 지구의 기후 안정과 AI 인프라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지켜낼 핵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니,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 거대한 열의 시대 앞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이상 관료주의적 타성과 낡은 규제의 틀에 갇혀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방향성이 확실하다면, 정부는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이 파괴적 냉각 및 에너지 효율 혁신을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우선은 에어컨의 전력 과다 사용을 막고 차세대 냉각 기술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낡은 건축 기준과 인증 장벽을 즉각 허물어야 한다.
보조금 살포라는 미봉책을 넘어, 고효율 냉방 시스템이 공공 건축물과 신도시 인프라에 선제적으로 도입될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 인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예: 공공 신축 건물 도입 시 초기 예산의 약 15~20% 수준의 세제 혜택 및 보조금 지원 등을 실시, 예상 소요 예산은 프로젝트별 세부 규모에 따라 유동적임)
다음으로는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집중 규제라는 미로 속에서 벗어나, 액랭 시스템 도입을 유도하고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R&D 지원을 투입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AI 컴퓨팅 인프라부터 전통적인 공랭식을 점진적으로 전환하고 차세대 액랭 솔루션을 도입하여, 국내 관련 소부장 기업이 글로벌 생태계의 핵심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실증 사업을 펼쳐야 한다. (예: 정부 주도 실증 사업에 연간 1,000억~2,000억 원 규모의 R&D 집중 투자)
지구는 펄펄 끓고 있고, AI는 전력을 집어삼키며 열기를 토해내고 있다. 기술은 이미 방향을 증명했다.
정부가 안일한 행정의 타성을 깨고 과감한 정책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훗날 펄펄 끓는 지구 위에서 가장 비싸게 전기를 태우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더위야 물렀거라!” 를 외치기만 한다면 이는 코미디다.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투자비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효율적인 대안이라고 여겨진 신기술이 그 효능이 입증되고 써보니 실효성이 있다면, 과감히 밀어붙일 때다. 명심했으면 좋겠다.
글쓴이=신중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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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 지사장
국회 홍보기획관
국무총리 공보실장/대변인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