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용만 논설위원]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뀔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 정책을 수정할 수도 있다.
잘못된 정책이라면 과감하게 고치는 것이 오히려 정부의 용기다.
그러나 국민이 묻는 것은 따로 있다.
“그래서 내 삶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깊이 새겨들어야 할 질문이다.
최근 정부는 우리 경제에 대해 수출 증가와 내수 개선을 바탕으로 경기 회복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실제로 생산·소비·투자 지표가 개선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고유가와 물가 부담, 청년·제조업·건설업 등의 고용 여건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숫자가 좋아졌다는 발표와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 정부는 그 간극부터 살펴야 한다.
국민에게 경제성장률 몇 퍼센트가 올랐느냐는 중요하다.
하지만 장을 보러 간 주부에게는 식탁 물가가 얼마인지가 더 중요하다.
청년에게는 거창한 성장률보다 일자리가 있는지, 집을 마련할 수 있는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지가 훨씬 절박하다.
자영업자에게는 국가경제의 회복이라는 선언보다 오늘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는지,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가 현실이다.
이것이 정치가 통계보다 국민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더 이상 정치적 구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집은 단순한 투자상품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은 재산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보금자리이며, 청년에게는 꿈의 출발점이다.
정부가 공급 확대를 이야기하고 정책을 내놓더라도 시장이 믿지 못하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을 놓고 정치권에서 ‘재탕’ 논란까지 벌어지는 것은 결국 정책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규제 그 자체보다 예측할 수 없는 정책이다.
오늘은 이것을 장려했다가 내일은 규제하고, 오늘은 세제 혜택을 이야기했다가 내일은 다시 손질한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수정할 때마다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왜 바꾸는지 납득시키며, 앞으로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 변경은 개혁이 아니라 정책의 갈팡질팡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청년들의 불신이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그런데 청년들이 정부 정책을 바라보면서 “또 바뀌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정책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정책은 한번 발표했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믿고, 시장이 예측하고, 기업이 투자하고, 청년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어야 비로소 성공한 정책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정책은 정부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공공의 약속이다.
따라서 정책이 실패했다면 실패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고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혼란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부 부처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기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통령도 최근 부처 간 의견 차이를 민주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의견 차이 자체가 아니다.
국민에게 최종적으로 어떤 정책을 내놓느냐가 문제다.
정부 안에서 토론하고 싸우고 수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앞에 나올 때는 명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이 길로 간다.”
그 확신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정치는 결국 신뢰의 산업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이 믿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반대로 당장은 고통이 따르는 정책이라도 정부가 솔직하게 설명하고 장기적인 방향과 책임을 보여준다면 국민은 참고 기다릴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무조건적인 퍼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기회를 원한다.
열심히 일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청년이 부모의 도움 없이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기업이 규제의 눈치를 보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
소상공인이 장사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를 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가 내일은 또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원한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에도 당부하고 싶다.
여당은 야당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정책을 돌아봐야 한다.
야당 역시 정부의 모든 정책을 반대하는 것만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없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실패를 기다리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경쟁이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도 국민의 삶 앞에서는 한계가 있다.
정권은 바뀔 수 있고 대통령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늘의 청년이 내일의 중년이 되고, 오늘의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된다.
그들에게 정치가 남겨줘야 할 것은 진영의 적개심이 아니라 기회의 사다리와 안정된 국가 시스템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다.
더 정확한 정책이다.
더 많은 공약도 아니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부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면 국민의 삶에서 그 회복이 느껴져야 한다.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면 국민이 실제로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가져야 한다.
청년을 위한다면 청년들이 정책을 믿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민생을 외친다면 시장과 골목에서 그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성적표다.
정부는 이제 국민에게 묻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발표한 정책을 국민이 정말 믿고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이 ‘아니다’라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정책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삶은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다.
오늘의 잘못된 정책은 누군가에게는 빚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실직이 되며, 누군가에게는 평생 마련하지 못할 내 집의 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는 신중해야 한다.
정치는 가볍게 말할 수 있지만, 국민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