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돈 칼럼】 단어의 속살, 삶의 궤적 - 스타벅스 매장에 들이닥친 '탱크'의 그림자, 운동장에 울려 퍼진 배재고의 낯선 구호 외침

2026.07.13 10:34:29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고 있는가.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스타벅스의 '탱크 해프닝'과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탱크데이' 구호 사건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스타벅스가 탱크를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했을 때, 그 누가 이것이 우리 현대사의 아픈 기억과 연결될 것이라 상상했겠는가.

 

우리에게 탱크는 단순히 철갑을 두른 기계가 아니다. 6·25 전쟁 당시 남침의 선봉으로 삼천리 강토를 유린했던 공포의 상징이었으며, 동두천에서 탱크에 의해 희생된 효순·미선 양의 비극,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짓밟았던 고통의 실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와중에 이병태 전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의 행보는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 논쟁을 정면으로 관통했다. 그는 배재고 사태에 대한 징계 논의가 불거지자,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영국 사상가 토마스 모어를 소환하며, 자신의 분명한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도덕적 양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끝까지 헨리 8세의 권력에 동조하지 않았던 토마스 모어처럼, 나 또한 신념을 지키기 위한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이는 단순한 사퇴 선언을 넘어, '5·18 성역화'라는 비판적 견해를 유지하며 권력과 여론의 압박 앞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굽히지 않겠다는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준 것이다.

 

그가 결국 사퇴의 길을 택한 과정은 우리 사회가 역사적 논쟁을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그리고 신념을 지키는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특히 프로야구계에서 해당 학교 선수 지명을 배제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나타난 것은, 실수를 한 개인을 향한 사회적 융단폭격이자 마녀사냥식 단죄가 도를 넘었음을 방증한다.

 

스타벅스와 배재고 사태의 원인은 명확하다. 스타벅스는 글로벌 마케팅의 현지화 과정에서 우리 역사의 특수성을 간과했고, 배재고 응원단과 선수들은 역사적 맥락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최근 사회적 이슈였던 '탱크'라는 키워드를 단순한 '밈(Meme)'으로 소비했을 뿐이다.

 

이를 제지하거나 왜 문제가 되는지 교육할 시스템이 부재했던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야구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사회적 사형 선고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하는 따끔한 교육과 계몽이다.

 

잘못된 역사의식을 왜곡 없이 바로잡고, 더 이상 본의에서 벗어난 언행이 나오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리 어른들과 사회가 짊어져야 할 진짜 '사회적 책임'이다.

 

역사의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변함없다. 아픈 역사를 상기하거나 불필요하게 다시 불러일으키는 언행에 대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실수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성숙한 관용'을 배워야 한다. 흑백논리로 상대를 단죄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정직할 수 없으며, 자정 능력은 퇴보한다. 실수를 저지른 이들이 역사적 무게를 깨닫고 스스로 바로잡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더 가치 있는 정의다.

 

실수를 성장의 계기로 삼고 무지를 깨달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따뜻한 계몽의 힘을 믿는다.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를 포용하며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한 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회적 자산이자, 희망의 시작이다.

 

글쓴이=신중돈 칼럼니스트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 지사장
국회 홍보기획관
국무총리 공보실장/대변인

역임

 

 

 

 

신중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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