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국회의 예산안 심사가 안개 속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이 거대의석을 앞세워 예산 심사를 보이콧하거나 일부 예산을 삭감하는 등 독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정부의 예산안에 반발하고 있어서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이번이 윤 정부의 실질적인 첫 번째 나라살림인 만큼 식물 예산안이 되지 않도록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어 향후 예산정국에서 강대강 대치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내년도 경찰국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과 관련 "예결위원회에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 조직에 맞도록 경찰을 외청으로 두고 있는 행정안전부가 인사 자료를 (담당) 하는 기구라 안 만들어주면 안된다. 그런데 (민주당이) 경찰국 설치를 반대했다고 예산을 안 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이같이 지적했다.
앞서 9일 개최된 행정안전부 예산 소위에서 경찰국 관련 예산 전액 삭감이 의결됐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행안부 경찰국 예산으로 기본 경비 2억900만원과 경찰국 배치 행안부 직원 인건비 3억9400만원(▲3급 1억2000만원 ▲4급 1억400만원 ▲5급 1억7000만원)이 편성된 바 있다.
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은 '건전재정 전환'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총지출 679조5000억원보다 줄인 639조원 규모로 편성했다. 내년 예산이 전년도 총지출보다 감액된 건 2010년 이후 처음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 같은 기조에 반발하고 있단 점이다. 민주당은 앞서 지난 10일 진행된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윤 정부의 예산안을 '비정한 예산'이라고 비판하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국민의힘이 경제 악화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의 방만 경영'을 지목하며 정부의 긴축 기조에 동참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처럼 예산안과 관련 시각에서 평행선을 달린 여야는 향후 예산정국에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벌써부터 진통을 겪고 있는 건 경찰국 관련 예산이다. 지난 9일 행안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예산소위를 열고 경찰국 설치에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독 의결로 전액 삭감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행안위 소속 이성만 의원은 예산소위에서 경찰국이 법적 근거 없이 설치됐기 때문에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예산안이 예산소위에서 전액 감액된 채 의결됐다.
주 원내대표는 "행안부 경찰국이 경찰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법상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 인사 제청권이 있다. 인사를 제청하려면 누가 누군지 알아야 하기에, 인사에 관한 자료만 관리하면 되는 것이지 경찰을 일방적으로 지휘하고 간섭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진실규명을 위해 민주당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한 것과 관련 "언론보도에서 민주당이 협의하겠다는데, 협의가 오면 협의 내용을 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원칙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면서 "다만 만나자는 데 만나지 않을 수 없으니 만나서 이야기는 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주 원내대표가 지난 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대통령실 김은혜·강승규 수석비서관이 '웃기고 있네' 필담으로 퇴장 조치를 한 것을 두고 '자기 정치'라는 비판이 당내에서 나오는 것과 관련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원만한 회의 진행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예산 관련 상임위 간사 간 비공개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수적인 우세를 가지고 절대다수라고 해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지금 예산뿐만이 아니고 그동안의 숱한 정책 이슈, 법안에서도 이미 봐 왔다"며 "이번 예산의 경우엔 감액도 있지만 정부 동의가 없으면 통과될 수 없는 증액도 있는데 민주당이 원하는 이슈가 되는 사업들이 증액과 연계 돼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하며 민주당 측의 양보가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여야가 예산안에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준예산이 편성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민주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낮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준예산은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 12월31일까지 처리하지 못할 경우 전년도 예산에 준해 편성하는 잠정 예산인데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직접 일자리 고용 사업, 사회간접자본 사업, 연구·개발 등 예산은 집행되지 않는 만큼 경제성장에 찬물이 끼얹어 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결위 소속인 한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 쪽에서 사상 처음으로 예산안 파탄 내보자는 얘기도 나오는데 이는 국가를 파탄시키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며 "현안이 한두 개가 아니고 이태원 참사로 안전예산에 대한 관심도 높은 상황에서 반대 입장을 내 준예산으로 넘어가면 화살은 민주당을 향하게 될 것인 만큼 우리도 주장을 굽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