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 '국정조사' 카드를 꺼냈다. 면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앞세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수사권도 없는 국정조사로 무슨 진실을 밝히겠다는 거냐"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또 한차례 충돌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은 8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불가 방침을 밝혔다. 강제성 없는 국정조사는 정쟁으로 흐를 수 있는 만큼 신속한 강제 수사를 통해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일단 ‘경찰 수사가 먼저’라며 야당이 단독으로 실행하려는 국정조사에 반대한다. 그러나 이미 경찰의 ‘셀프 조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 막판 국정조사에 합의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국조 반대라는데) 입장 변화가 없다”면서 “‘현재까지는’ 없다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24일 본회의까지 아직 열흘 이상 시간이 남은 만큼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야당과 국정조사 범위나 내용에 관한 협상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다만 '수사 결과가 미진하다면 국정조사와 특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향후 경찰 수사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경우 야당의 요구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 희생자 유가족들과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신속한 강제 수사를 통해서 참사의 원인을 조속히 밝히고 책임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이번 수사의 성공 핵심은 신속성과 강제성"이라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국정조사는 강제성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수사 지연과 증거 유실의 우려도 있다"며 "물론 어떤 조치라도 다 사용할 수 있지만, 국정조사와 특검은 국회 논의가 필요하고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해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오히려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가 미진하다면 국정조사, 특검도 마다치 않고 우리가 앞장서서 추진할 것"이라며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희생자들의 억울함과 유가족의 슬픔을 진정으로 달래기 위한 초당적 협력 태도를 가져줄 것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국민의힘이 국정조사와 특검 요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정부 책임론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30%대를 회복한 지 한 주만에 다시 20%대로 떨어졌다. 하락폭은 30%에서 29%으로 크지 않으나 여권에서 잇따라 터져나온 실책성 발언 등으로 민심이 요동 치는 만큼 여당의 국정조사 공세를 선제적으로 차단해 사고 수습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지도부가 윤 대통령의 진상규명 의지를 강조하며 엄호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논평에서 "쇼가 익숙한 민주당은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와 닿지 않느냐"며 "슬픔마저 또 하나의 기회로 삼으려는 억지라면 제발 그만두기를 바란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와 함께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 배후로 민주당을 지목하며 국정조사 역시 정쟁을 위한 도구라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대하는 민주당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며 "유가족 슬픔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패륜행위"라고 비판했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은 반정부시위에 조직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재난의 정쟁화, 정치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했고, 장제원 의원 역시 민주당 인사들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겨냥해 "이 문자는 직설적으로 '이태원 참사를 정략에 이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충격을 넘어 참담함"이라고 직격했다.
민주당은 오는 9일 의원총회를 열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다만 관행상 특정 정당의 단독 처리를 지양해온 만큼 본회의 전까지 협상 여지는 열어뒀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많은 국민의 희생된 안타까운 참사에 여당도 진상규명에 협조할 것을 기대한다"며 "수시로 수통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75명)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할 경우 국회의장은 지체없이 본회의에 보고하게 돼 있다.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과반 동의로 통과할 수 있어 169석을 가진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전날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 합의에 따른 국정조사 추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경찰 수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나 국민 여론이 계속 악화할 경우 국정조사를 거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경찰청)의 중간 결과가 나오고 유가족의 진상규명 요구가 강해지면 국민의힘에겐 압박이 될 전망이다.
주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의 일관된 입장은 수습과 진상파악 먼저"라며 "이후 법적 책임을 물을 일이 있으면 엄격하게 묻겠다. 책임에는 법적, 지위,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진석 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경찰을 못 믿겠다면서 수사권도 없는 국정조사로 무슨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인가"라며 "대형사고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개정하는 것이 국정조사보다 먼저"라고 밝혔다.
정 비대위원장은 "이태원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경찰이 경찰을 수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민주당이 입법독재로 통과시킨 검수완박 법으로 인해 검찰은 이태원 사고를 수사할 수 없게 됐다"며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사법 체계를 무너뜨린 검수완박 법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부끄러움도 없이 '경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며 "민주당이 169석으로 지금까지 한 일이 무엇인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탄막이'에 급급하지 않았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21대 국회 들어 국민의힘은 총 7건의 국정조사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매번 거절했다. 그때마다 민주당이 앵무새처럼 했던 말이 '수사 중인 사안'이었다"며 " "1999년 옷 로비 사건 국정조사로 밝혀진 것은 고(故) 앙드레 김 선생님의 본명이 김봉남이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전부였다"고 했다.
정 비대위원장은 "검수완박법을 바로잡는 게 먼저"라며 "70여년 간 대한민국의 대형비리, 권력형 비리를 수사해온 검찰의 손발을 묶어두고 진실을 규명하자고 하면 누가 믿겠냐. 경찰이 제 식구를 수사하는 사법체계를 그대로 둘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5일까지 애도 기간이고 사태 수습이 우선인 점, 수사가 진행되고 다음주 월요일(7일) 행안부 긴급현안질의가 예정된 점 등을 고려하고 국정조사 요구서를 본 후 수용 여부나 범위, 시기를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