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취임한 지 한 달을 갓 넘긴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11일 첫 국정감사를 치렀다. 이날 국감에서는 기금운용본부의 대규모 운용 손실과 이에 대한 해결 방안, 국민연금 개혁,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반 투자에 관한 다양한 질의가 나왔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국정과제인 연금개혁 방향에 대해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면서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전제 하에 세대 간 형평성을 감안해 사회적 합의로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김 이사장은 11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 "연금개혁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냐"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 실무집행기관으로서 연구원을 중심으로 재정추계 및 제도 개선 관련 주요 쟁점사항을 도출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데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연금저축 세입공제 납입한도를 상향하는 법안을 제출하는 등 사적연금 활성화에는 적극 나서면서 공적연금 개혁 논의는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공적연금 보험료를 무한정 부담할 수 있다면 노후소득 보장성도 확보되고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확보되지만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을 감안해야 하니 연금개혁은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라며 "5차 재정계산에 따라 연금 관련 여러 상생 개혁안이 준비되고 논의에 착수할 것이다. 공단은 차질 없이 뒷받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을 비롯해 안효준 기금운용본부장(CIO) 등이 증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당초 예상대로 기금운용본부의 운용 손실과 관련된 문제 제기가 국감의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최 의원은 국민연금이 초대형 신규 상장주를 대거 사들이는 것도 문제 삼았다. 그는 “작년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크래프톤(180,200원 ▼ 3,700 -2.01%)과 카카오뱅크27,850원 ▼ 1,050 -3.63%), 카카오페이(64,500원 ▼ 2,800 -4.16%) 등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의 대형 기업이 많이 상장했는데, 이들 기업이 코스피200지수에 편입될 가능성이 크니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빨리 포트폴리오에 담아 벤치마크 지수의 수익률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 같은 금리 상승기에는 인터넷 기술주가 특히 큰폭으로 하락하며, 크래프톤 같은 경우는 반토막 이상으로 떨어지는 등 큰 손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신규 상장주 집중 매수는 그간 자본시장에서 꾸준히 지적돼온 사안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실제로 올 들어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연초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510,000원 ▲ 4,000 0.79%)(5조2000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63,300원 ▼ 1,300 -2.01%)와 SK하이닉스(90,700원 ▼ 800 -0.87%)를 5조3000억원어치 판 것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연기금이 작년 한해 동안 가장 많이 산 종목 역시 신규 상장주 크래프톤(1조1800억원)이었다. 크래프톤 주가는 상장 이후 현재까지 63% 넘게 하락한 상태다. 지금처럼 시장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크래프톤 같은 기술 성장주가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기 마련이다. 성장 기업의 몸값에는 미래 현금 흐름이 반영되기 때문에 금리(할인율)가 높아지면 성장주의 밸류에이션도 더 떨어지게 된다.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10.77%의 운용 수익률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및 고강도 긴축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증시가 하락한 가운데 대규모 손실을 내고 있다.
올 상반기 국민연금의 손실률은 8%에 육박한다. 특히 국내 주식 손실률(-19.58%)이 가장 높았으며, 해외 주식(-12.59%)을 통한 운용 손실도 컸다. 대체투자가 7.25%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유일하게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국감에서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어려운 증시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선방한 건 맞지만, 기금운용본부가 코스피지수 같은 벤치마크(BM)지수보다 조금만 더 잘하면(손실을 최소화하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으로 기계적인 운용을 한다는 우려가 있다”며 “초과 수익률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인 운용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20~30대 청년들이 매달 국민연금 보험료를 부은 만큼 돌려받을 수 있는지, 고령층을 위해 희생하는 거 아닌지 불신이 크다는 지적에는 "지역가입자와 사업장 고용주 등도 마찬가지로 보험료 부담이 올라가는 데 대한 부담이 있을 것"이라며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해 당사자가 각자 조금씩 양보하면서 부담률을 높여가는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열정부는 연금개혁을 국정과제로 내세워 보건복지부 및 국민연금공단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는 재정계산위원회를 구성해 내년 3월까지 제5차 재정계산을 도출한다.
복지부는 이를 토대로 9월까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세워 국민연금심의위원회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받은 후 10월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민연금 및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 개혁의 큰 방향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주로 논의하게 된다.
자녀 수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가 노령연금 수급권을 취득할 때 가입기간을 추가로 산입해주는 '국민연금 출산 크레딧'을 첫째 아이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 김 이사장은 "찬성한다"고 답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연금개혁에 대해서도 질의가 이뤄졌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인수위원회에서 연금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약속했음에도 지금껏 제대로 안 하다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로 대체한다고 했는데, 연금개혁을 국회에 떠넘기고 강 건너 불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며 “정부는 공적연금이 아닌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는 광고나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 죄악주에도 총 3조9089억원이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 하이네켄, 디아지오,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 등이 투자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남 의원은 “국민은 술, 담배, 도박으로 인한 질병 때문에 매년 수조원의 국민건강보험료와 병원비를 지출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죄악주에 대한 투자 비중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역시 “지난해 5월 국민연금이 네거티브스크리닝을 도입했고 석탄 산업에 대한 투자 중단을 의결했지만 이로 인한 변화가 하나도 없으며, 술·담배 관련 죄악주에 대한 투자 배제 원칙도 적용되지 않았으며 국민 정신건강에 위해가 되는 확률형 아이템을 수익원으로 하는 게임사에 대한 투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고용 의무화 등 사회 공헌과 관련된 항목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이 의원은 덧붙였다.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도 “국민연금이 탈석탄 선언을 한지 1년 6개월이 돼가지만 아직 정책 수립은 답보 상태”라며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연기금은 탄소중립 목표를 앞당기는 계획안을 발표했는데, 이처럼 글로벌 연기금들이 탄소중립을 향해 속도를 내는 것과 달리 국민연금은 너무 소극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탈석탄 투자를 위한 연구 용역 결과가 나왔고, 보건복지부가 의견 수렴을 통해 올해 말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단계적 투자 제한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