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사를 남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엔 노벨 평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하지만 그 영광도 잠시, 그가 과연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남겼냐는 데 논란이 뜨겁다. 미국 내에서도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왠 노벨상?”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룩한 성과에 비해 수상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취임 9개월만에 노벨상 받은 오바마
독일 슈피겔지는 “취임 9개월째인 그가 상을 받는 것은 2~3㎞ 달린 마라토너에게 메달을 주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을 통해 “모두를 당황케 만든 이상한 노벨평화상”이라고 비판했고,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 대사는 “그(오바마)는 상을 거부하고 3~4년 뒤에나 다시(시상을) 검토해 줄 것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진화에 나섰다.
가이르 룬데슈타드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지난 10월12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노벨위는 오바마 대통령이 다자외교와 핵무기 군축 그리고 기후변화 등의 분야에서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많은 기여를 했음을 확신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상당수가 아직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음을 인정한 뒤 “이번 노벨상 수상이 정책을 집행하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혀 의혹을 완전히 불식시키진 못했다.
1895년 노벨상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벨(Nobel)은 “국가 간 우애나 군대감축, 혹은 평화 증진에 가장 많은 일을 했거나 가장 훌륭한 일을 한 인물에게 이 상을 주기 바란다”고 유언을 남겼다. 첫 수상을 하게 된 1901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96명의 개인과 20개의 단체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노벨상의 여러 부문 중 유독 노벨평화상은 과거 정치적 목적이 진정성을 퇴색시키고 선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논란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그 의혹은 첫 번째, 노벨평화상은 스웨덴 한림원이 아닌 노르웨이에서 결정한다. 때문에 선정위원회 구성은 노르웨이 의회에 달렸다고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바람을 타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올해 노벨위원회는 투르뵤른 야글란트 위원장(59세)을 뺀 나머지 위원 4명이 모두 여성이고 좌파 정당소속 정치인들이 다수 차지했다.
특히 토르비외른 야그란드 위원장은 노르웨이 노동당 당수 출신이며, 시셀 마리 뢴벡 위원과 아고트 발레 위원도 좌파 정치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을 두고 일부에서 ‘좌파 공세’로 몰아붙인 이유도 여기 있다. 좌파 성향의 위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적극 밀었다는 추측이다.
‘빛바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
노벨 평화상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수여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2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수상이다. 2000년대 들어 조지 부시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기 시작한 노벨위원회는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한 배경을 발표하면서 미국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에 나선 데 따라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노벨위원회는 당시 “힘을 사용하는 데 따른 위협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카터는 국제법과 인권 존중, 경제 개발을 토대로 국제적 협력과 중재를 통해 분쟁이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공고히 했다”고 강조했다.
2005년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평화상 수상에도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IAEA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나선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불편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한편 대선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을 끝까지 애먹였던 민주당 후보 앨 고어를 2007년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1989년 중국에서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한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터진 당시에도 노벨위원회는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평화상을 안겨줬다.
노벨평화상 선정 부적합 논란
노벨위원회는 1994년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PLO 의장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당시 총리에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출범을 가져온 오슬로 협정을 성사시킨 공로로 평화상을 공동 수여했다. 그러나 PLO가 과거 테러 공격을 일삼아 왔으며, 중동 긴장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수상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1973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평화상 수상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했다. 그는 베트남전을 종결시켰다는 공로로 평화상을 받았지만,닉슨 행정부에서 전쟁 정책을 총괄했다는 점에서 “이것보다 더한 풍자거리는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벨평화상의 ‘선정 부적합’ 논란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지적됐다. 2001년 평화상위원회가 펴낸 책자 ‘노벨평화상, 평화에의 100년’은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총리(1974년)의 수상의 허점에 대해 꼬집었다. 사토는 ‘핵무기는 만들지도, 갖지도, 들여오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국책으로 삼은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훗날 공개된 기밀문서에 따르면 그는 핵무기를 실은 미군 함정의 일본 기항을 용인했고 일본의 핵무장을 검토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재임 중인 1906년 평화상을 받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러·일 전쟁 종전을 중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힘의 외교’를 펼친 그가 과연 평화상을 받을 만한 평화주의자였느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루스벨트 재임시절 미국과 일본에 체결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보장해 주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냉전 종식의 공로로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이 이 상을 받았을 땐 그의 파트너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왜 제외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논란은 비단 평화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독일의 과학 전문 작가 하인리히 찬클 박사는 저서 ‘노벨상 스캔들’에서 잔인한 독가스를 개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프리츠 하버, 동료의 연구결과를 훔친 DNA 발견자 왓슨, 기생충이 생쥐에서 암을 유발한다는 황당한 연구로 상을 받은 덴마크의 병리학자 요하네스 피비게르, 평화상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윈스턴 처칠 등을 포함한 부적절한 노벨상 50가지 사례를 꼽기도 했다.
하지만 노벨상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다른 노벨상과 달리 평화상은 어차피 위원회에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화상이 아닌 노벨 ‘정치상’이란 말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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