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일본 농림수산성이 지난 5일 부랴부랴 발표한 궁색한 보도자료다. 지금 일본열도는 교토부(京都府)에 소재한 단바쵸(丹波町)라는 한 조그만 마을의 양계장에서 2월20일 발생한 조류독감 바이러스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교토부는 물론 일본 정부당국은 바이러스가 검출된 문제의 후나이(船井) 농장의 닭 25만마리를 긴급 처분키 위해 일본 자위대 약800명을 투입하는 ‘대소동’을 피웠다.

문제가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는 다름 아닌 관련자들의 늑장대응과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양계장 측에서는 닭들의 대량사가 속출하는 가운데에도 해당 행정기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닭들의 사인을 조류독감이 아니라 단순한 장염으로 넘겨짚어 버린 것이다. 전세계가 조류독감 공포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설마 우리 닭들이야”라는 안이한 사고가 결국 ‘큰일’을 내고 만 것이다. 문제발생후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한 익명의 전화에 의해 신고됐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더 큰 문제로 비화될 뻔했다.
관계당국도 후나이 양계장에서 출하된 닭이 효교현(兵庫縣) 등 일본각지로 유통되었음에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다가 나중에 번복 시인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양계장측에서 조금이라도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감염된 닭들을 감쪽같이 시중에 유통시키려 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행정당국이 이를 묵인하는 꼴이 된 것이다. 이처럼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관계당국은 주변일대의 방역은 물론, 해당 농장을 가축전염병예방법의 보고의무조항 위반혐의로 형사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고발조치를 당하면 곧바로 일본 경시청의 압수수색이 이어지며, 최악의 경우에는 닭장의 문을 닫아야 하는 것도 상정할 수 있다.
양계업계 거물, 아사다 회장 자살
이에 대한 중압감과 죄책감이었을까. 지난 8일 아침, 후나다 농장이 속해 있는 아사다(淺田)농산 주식회사의 아사다 회장(67) 내외가 효고현에 소재한 본사 근처에서 목을 메고 자살했다. 애지중지하고 키운 닭들의 대량사라는 막대한 경영손실과 함께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실은폐의혹이라는 세간의 차디찬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신의 닭들의 운명처럼 죽음을 택한 것이다. 아사다 회장은 일본양계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양계업계의 거물급 인사로, 그의 자살로 금번 조류독감 발생의 진상규명이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과 여타 양계농가에도 여파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고병원성(高病原性) 조류독감(H5N1형)’이라 불리는 이번 교토부 조류독감 발생사례는 야마구치현(1월12일), 오이타현(2월17일)에 이어 금년 들어 벌써 세번째다. 그래서 교토부의 경우는 어찌보면 예견된 것일지 모른다는 여론도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편, 이러한 일련의 조류독감은 일본내에서 79년만에 처음으로 발생한 것이라 더욱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간감염 여부 촉각
관심의 초점은 조류독감이 사람에게 감염되는지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이렇다할 설명보다는 “전세계적으로 조류독감이 인간에 전염된 전례가 없다”는 것만을 소비자들에게 되풀이 상기시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일본 매스컴들도 조류독감에 대한 관련자들의 초동대책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인간감염’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연일 관련 전문가들을 내세워 “조류독감에 걸린 닭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한” 그리고 “일본의 일반적인 식생활과 생활환경을 고려할 경우에”라는 단서조항을 내세워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에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호락호락 믿을 일본인들이 아니다. 아무리 감염성이 없어 안방식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해도 위생과 건강 챙기기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일본인들인지라, 닭고기에 대한 불안심리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광우병에 이어 닭고기마저
조류독감이 이렇게 큰 이슈를 모으고 있는 것은 일본인들의 식생활에서 닭고기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토리카라아게(닭튀김) 오니기리(주먹밥) 벤또(도시락) 토리돈(닭고기덮밥) 등 닭고기가 주재료로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 없을 정도다. 그 뿐만 아니라, 밥 위에 풀어먹는 날계란은 보통 일본인들의 아침식사시 빼놓을 수 없는 단골메뉴다.
게다가 닭고기는 일본 총무성이 매년 발표하는 ‘일본인 육고기 소비량’에서 쇠고기, 돼지고기와 함께 늘 3순위 안에 랭킹될 정도로 인기가 많고 또한 심심찮게 터지는 광우병 파동으로 닭고기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던 터였다. 특히, 최근 미국산 광우병 소동으로 꼼꼼하기로 정평 나있는 일본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금지하자 그 대체재로서 닭고기가 돼지고기와 함께 한 몫을 톡톡히 차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저가격 규동(쇠고기덮밥) 전문점의 대명사로 통하는 마쓰야(松屋)나 요시노야(吉野家)에서 쇠고기가 그 자취를 감추고 닭고기 덮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 발간 ‘가계조사보고서’에 의하면2002년 현재 일본인의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3.71kg으로, 최근 수년간 그 소비량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류독감 파문 때문에 일본 닭고기 소비시장은 한동안 꽁꽁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내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인 세이유(SEIYU)의 한 관계자는 “이번 파동으로 닭고기 판매량이 점점 줄고 있다”며 걱정을 토로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동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이번 교토부내의 죽은 까마귀에서 또다시 동일한H5N1형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 바이러스가 닭에서 옮은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에 대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타 지역으로의 감염확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관계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국민의 식생활 보호와 양계농가의 현실적 생계문제, 그리고 아사다 회장의 돌연사라는 그리 녹록치 않을 ‘삼중고’를 짊어진 일본정부가 과연 금번 조류독감 파문을 슬기롭게 잠재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라경수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과정, rhasoo @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