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서도 뚜렷한 명암을 남겼다.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시장경제의 원칙을 세우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임기 말 외환 관리와 금융 감독에 실패해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한 오점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금융실명제는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김 전 대통령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가명이나 무기명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전 정부에서도 수 차례 금융실명제 도입 시도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정치권과 경제계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 의견이 제기돼 번번이 좌절됐다.
금융실명제는 김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93년 8월 12일 전격 단행됐다. 제도 도입에 따른 경제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밀리에 추진됐고, 대통령 긴급명령이라는 형식으로 기습 발표됐다.
지난 22년간 금융실명제는 우리나라의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하경제 규모가 확대되는 것을 억제하고 불법 정치자금 등 각종 비리 사건으로 인한 부작용도 줄였다는 평가다.
당시 금융실명제 준비 작업에 참여했던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당시 재무부 세제심의관)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검은 정치자금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만든 금융실명제 덕분에 모든 금융거래를 자기 이름으로 하는 것이 전제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문민정부는 금융실명제에 이어 1995년 부동산거래실명제를 도입하면서 경제개혁 정책을 이어갔다.
OECD 가입도 김 전 대통령의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문민정부는 '세계화'를 국가 정책으로 내걸고, 대회 개방을 추진하고 국제기구 가입에 역량을 모았다. '선진국 클럽'이라고 불리던 OECD 가입을 역점 사업으로 선정하고 과감하게 가입 협상을 추진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외화출자와 개도국 지원 등 의무 사항이 많아 부담이 크다는 반대 여론도 있었지만 정부는 임기 전반기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1996년 10월 OECD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문민정부는 자본시장 개방, 공공부문 민영화 등을 통해 시장경제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정부가 과감하게 추진한 시장 개방은 결국 1년 만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OECD에 가입을 위해 외환·자본 거래 자유화를 추진했지만 개방 충격을 흡수할 대비책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1997년 들어 금융기관들의 과도한 단기 자본 차입과 한보, 삼미 등 대기업의 연쇄 부도 등에 따라 금융시장은 경색되기 시작했다. 해외 금융기관들은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국가 신용위기가 불거지자 우리나라에서도 자금 회수에 나섰지만 외환 보유액은 바닥이 난 상황이었다.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간신히 국가부도 사태를 면했지만 IMF 환란은 우리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다. 1997년 12월에는 하루에 100개 이상의 기업이 부도를 내고 쓰러지기도 했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직자도 급증했다.
김 전 대통령은 IMF 사태 이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거센 비판 속에 1998년 임기를 마쳤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퇴임사에서 "영광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며 "사태가 이렇게 된 책임은 오직 대통령인 저에게 있으므로 저는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