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올해 발표한 신곡 ‘늦기 전에’로 기존과는 다른 변신을 시도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가수 배일호는 최근의 창법 변화가 “자기 안의 틀을 깨는” 작업이었다고 토로했다.
“내가 쓴 곡이나 가사는 모두 아내를 모델로”
21집 앨범 타이틀곡 ‘늦기 전에’는 배일호가 직접 가사를 쓰고 이재인 작곡가가 곡을 붙인 노래로 섬세한 선율과 세련된 느낌이 돋보인다. 그동안 ‘신토불이’를 비롯해 ‘99.9’, ‘꽃보다 아름다운 너’, ‘폼나게 살거야’, ‘장모님’ 등 히트곡을 선보여 왔던 그는 “이번 곡으로 팬 층이 60~70대에서 30대까지로 확대됐다”고 만족을 표했다.
“30년 가까이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다보니 스스로가 뻔한 스토리에 식상함을 느꼈다”며, “변신의 욕구는 항상 있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엄청난 연습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그의 노력은 팬 층을 두텁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연말 각종 시상식을 휩쓰는 눈에 띄는 성과로 드러나고 있다.
‘늦기 전에’는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랑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가사 또한 인상적이다. “그동안 내가 쓴 곡이나 가사는 모두 아내를 모델로 한 것이다”는 그는 “이번 곡 또한 아내를 생각하며 썼지만 반복적인 내용을 피하기 위해 조금 비틀었다”고 밝혔다.
아픔 치유 위해 시작한 그림
‘폭풍우 같은 활화산 같은 그런 사랑 내게 온다면 내 남은 인생 남은 생을 모두 태우고 싶다’는 ‘늦기 전에’의 가사처럼, 사실 배일호의 인생은 ‘열정’ 하나로 설명될 수 있을 정도다. 국내 트로트 가수 중 최다 앨범 발표자라는 타이틀을 얻을 만큼 음악 활동에 매진해왔을 뿐만 아니라, ‘순이야’ ‘꽃보다 아름다운 너’ ‘정말로 정말로’ ‘당신이 원하신다면’ ‘친구야’ ‘오뚝이 인생’ 등 많은 자작곡을 발표하며 싱어송라이터로 활약해왔다.
작년 8월 초대개인전을 열면서 화가로서의 모습도 선보였던 그는 아마추어로 보기 힘든 미술적 재능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마치 그 풍부한 음악적 활동으로도 모자라다는 듯 넘치는 예술적 에너지를 붓끝으로 발산한 그의 그림들은 그의 노래처럼 푸근하기도 서정적이기도 아련하기도, 그리고 열정적이기도 하다. 그림에 대한 주변의 호평에 대해 그는 “정식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도도 안 맞고 이상할거다. 하지만 그 덕에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스러운 그림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림은 몸이 아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권해서 시작하게 됐다. 그는 현기증과 청력 저하 등의 증상이 동반되는 메니에르병으로 오래간 고생했다. 아내의 정성어린 간호와 함께 그림 그리기는 치료에 결정적 도움을 줬다.
장모님의 결사반대에 성공 열망
애처가로 유명한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이 모든 열정의 근원”이라고 단언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공부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부유한 환경에서 번듯하게 자란 아내와 결혼하려니 장모님의 결사반대가 따르는 것은 당연했다”며, “노력하고 보여줘야 한다. 내가 만든 둥지가 튼튼하고 따뜻해야 아내가 떠나지 않고 장모님도 나를 받아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혼신을 다해 살았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장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위가 됐다. “장모님 사랑을 받는 비결은 현찰”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그는 “장모님에게 투자하면 아내에게 두 배로 사랑 받을 수 있다”며 웃었다.
“어렸을 때 내 이름도 못쓸 만큼 공부할 기회도 얻지 못하다보니 모든 것에 집념과 열정, 욕망이 강렬해졌다”는 그의 말은 결핍을 승화시킨 아티스트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가난을 딛고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국민 가수로 우뚝 선 그는 “모든 성공 스토리는 ‘나’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드라마 ‘미생’을 즐겨 보는데 계약직 신분이지만 서서히 인정받고 핸디캡을 극복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 젊은 시절 내 모습이 투영되더라”는 그에게서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좋은 목소리는 건강한 정신에서 나온다”
그래서일까. 그는 봉사활동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여 왔다. 결혼식 축의금 전액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던 그는 군부대 위문공연으로 받은 감사패가 30여회에 이르고 탑골공원에서 노숙자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식사대접 등 각종 무료공연과 기부를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다. 부인 손귀예 씨와 함께 부부 유화전 및 개인전을 열어 유화 30여점의 판매수익금 전액을 원로 선배가수를 위한 기금으로 가수협회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 같은 봉사활동에 대해 그는 “그저 은공을 보답하는 마음으로 밥값 내는 정도다”며 겸손해했다. “하나도 없을 때, 가난할 때도 잘 살았는데 더 마음을 비워야 한다. 부자일수록 짐을 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눔에 대한 따뜻한 가치관을 드러냈다.
서민적이고 푸근한 그의 성품은 노래에도 녹아들어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데 일조해왔다. 대표곡인 ‘신토불이’ 때부터 농민의 마음을 대변해왔던 그는 애향심 또한 남다르다. “고향은 어머니 품 속”이라는 그의 고향 사랑에 대해 2007년 고향인 논산에서는 모금과 시의 지원을 통해 신토불이 노래비를 세우기도 했다.
“좋은 목소리는 건강한 정신에서 나온다”고 믿는 가수 배일호. 그가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을 얻은 데에는 농민과 소시민의 마음을 꿰뚫고 위로하는 주옥같은 히트곡들과 걸출한 가창력은 물론, 그 이상의 진정성과 인생에 대한 열정적 태도까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