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삼 기자 2014.09.17 16:08:38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세월호 특별법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과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데는 명확히 반대한다는 뜻을 드러내 파문이 일고 있다. 삼권분립은 물론 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인데, 유가족들과 야당에서는 박 대통령이 사실상 여당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맹반발하고 있다. 특히, 특별검사제도 등 그동안에도 민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온 사례들이 있으면서도 특별히 이번 세월호 진상조사에 대해서만 사법체계 근간을 운운하는 것은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가로막겠다는 핑계에 불과하다며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 같은 입장을 천명하고 나섬에 따라, 여당도 더 이상의 타협이나 협상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치가 그야말로 실종돼 버린 것이다.
◆“국민에 대한 의무 행하지 못한다면 세비 반납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진상조사위원회 수사권 및 기소권 부여 문제에 대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 문제와 관련해 “지금의 세월호 특별법과 특검 논의는 본질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문제제기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여야 원내대표들은 저와의 만남에서 이런 내용들을 담은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기로 약속했고 두 차례에 걸쳐 합의안을 도출했다”며 “그러나 그 합의안이 두 번이나 뒤집히고 그 여파로 지금 국회는 마비상태”라고 야당을 겨냥해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특별법은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희생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결단하라지만,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장기파행을 겪고 있는데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국회는 국정운영의 중요한 한 축으로 국회가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정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 된다”면서 “지금 시급한 민생법안은 전혀 심의되지 않고 있고, 의회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민생도 경제도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거듭 세월호 특별법의 여야 합의 처리를 촉구하면서 국회의원 세비 문제에 대해 “만약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에게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생법안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국회가 장기 표류하고 있는데 따른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이 또한 사실상 국회 의사일정 논의조차 참여하지 않고 있는 야당을 겨냥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 이 자리에서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며 “앞으로 법무부와 검찰은 이런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이 ‘대통령 연애’ 발언을 한 것을 겨냥해서도 작심한 듯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며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의 위상 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앞서, 설훈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의장단 및 국회 상임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얘기,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던 바 있다. 이에, 박 대통령이 작심해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가장 모범이 돼야 할 정치권의 이런 발언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국회의 위상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며 “앞으로 정치권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與지도부 靑회동 “여당이라도 문제해결 앞장서야”
한편, 박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여당이라도 나서서 어떻게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여당 단독으로라도 국회 정상화에 나서야 함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특히 세월호 특별법 문제에 대해서도 “여야 합의 처리가 바람직하지만 3권 분립과 사법 체계 근간을 훼손해서는 안 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참 이야기 되고 있는 기소권과 수사권 문제는 사안마다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사법체계나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의회 민주주의도 실종되는 큰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그래서 그건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라 본다”고 명확한 입장을 거듭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어, “국민들은 민생이 급하니까 민생을 좀 풀어달라고 국회만 바라보고 있는데 계속 이런 식으로 가게 되니까 저도 마음이 참 답답해서 여러분들한테 부탁을 드리려고 뵙자고 했다”며 이날 여당 지도부와의 회동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아울러, “특검도 법에 여야가 추천권을 다 갖고 있는데도 양보를 해서 어떻게든지 성사시키기 위해서 (여당이) 극단까지 가면서 추천권에 대해 양보를 하지 않았냐”며 “그런데 여야가 두 번이나 합의한 것이 뒤집어지는 바람에 국회도 마비되고 야당도 저렇게 파행을 겪는 상황까지 됐다”고 거듭 야당을 겨냥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지적에 김무성 대표는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통령이 혼신을 다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민생 관련 경제 대책 법안이 빨리 처리돼야 하는데 도와드리지 못해 대단히 죄송하고 국민들께 굉장히 죄스러운 마음”이라며 “(협상) 상대가 없어진 상황이 됐기 때문에 지금 계속 노력해서 빨리 풀어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의사일정을 결정하게 되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야당이 참여를 하지 않는다해도 더 이상 국회를 파행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명분은 충분히 쌓았다고 본다”며 “다소 어렵다 하더라도 더 이상 국회를 공전으로 둘 수는 없어서 단호한 입장에서 (민생법안을) 처리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 회동에는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비롯해 주호영 정책위의장과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자리를 함께 했다. 청와대에서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이 배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