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철호 기자] 세계랭킹 9위의 벽은 높아도 너무 높았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농구대표팀이 31일(한국시간) 스페인 라스팔마스의 그란 카나리아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와의 2014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D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높이의 열세를 절감하며 55-89로 졌다.
리바운드에서 18개-47개로 압도 당한 한국은 FIBA랭킹 9위 호주의 높이를 절감하면서 2연패를 기록, 최하위로 처졌다.
유 감독은 "역시 세계랭킹이 높은 팀은 기술뿐 아니라 신장, 힘이 월등하다는 걸 느꼈다. 한국 농구는 아직 국내에서만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세계무대에 더 넓게, 계속 경험하면서 선수들이 몸소 느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한국은 호주 선수들의 거친 몸싸움과 높이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크고 작은 부상도 입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게 세계 농구이다. 체격이 작은 건 우리가 가진 엄연한 현실인데 격렬한 몸싸움을 하고 부딪혀보는 경험을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이다"며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건 선수들한테 감독으로서도 미안하다"고 했다.
이어 "이번 대회를 통해 나나 선수들 모두 '농구는 이런 것이다' 하는 걸 경험하는 계기가 됐다. 몸싸움이 격투기 수준으로 이뤄지지만 심판들이 그런 몸싸움을 인정해준다"며 "비겁한 행동만 아니면 격한 몸싸움을 정상적으로 인정하니까 우리가 힘든 것이다"고 했다.
한국은 앙골라와의 1차전과 이날 경기에서 모두 외곽포가 침묵했다. 한때 국제무대에서 '양궁농구'라고까지 불렸지만 자취를 감췄다.
이에 대해 유 감독은 "슛이라는 건 자신의 정상적인 밸런스와 컨디션에 따라 좌우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슛을 쏘기 전에 몸으로 많이 부딪히면서 밸런스가 이미 깨졌다"고 설명했다.
다음 상대인 슬로베니아는 FIBA랭킹이 13위이지만 순위는 숫자에 불과하다. 랭킹이 더 높은 호주를 90-80으로 꺾은 강호다.
유 감독은 "선수들에게 '기죽을 필요 없다'고 했다. 지금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부분을 우리가 못 하고 있는 면은 인정한다. 이런 좋은 경험을 계속 살리면 점점 나아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어 "국제무대에서 몸싸움, 리바운드 블록슛 등에 대한 적응력이 필요하다. 몸싸움에 대한 적응력이 없으면 우리는 국내 리그에만 머무르는 한국 농구가 된다"며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에서도 안 된다"고 했다.
전날 스페인과 이란의 경기를 봤다는 그는 "이란이 20점 차로 지는데도 꾸준하게 쫓아갈 수 있었던 건 몸싸움이 되는 팀이기 때문이다. 또 국제대회 경험이 많았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유 감독은 주전 슈터 조성민(31·KT)을 아꼈다. 25분을 뛰게 했다.
유 감독은 "(조)성민이가 앙골라전에서 30분 넘게 뛰었다. 혼자 그렇게 많이 뛰는 건 무리"라며 "(허)일영이가 슛 감각을 찾아야 하는 면도 고려했다. 그래서 일영이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많이 돌렸다"고 했다.
그는 또 "인천아시안게임도 있지만 (1승 상대로 꼽고 있는)멕시코전도 남아있기 때문에 고루고루 투입해서 경기 감각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했다.
한국 입장에선 패배 못지않게 문태종(39·LG)과 오세근(27·상무)의 부상이 뼈아프다. 문태종은 왼 팔꿈치 물주머니가 터졌고, 오세근은 상대 팔꿈치에 맞아 턱 밑이 찢어졌다. 두통을 호소하고 있다.
유 감독은 "(문태종의 경우)트레이너 말로는 쉬면 나을 거라고 하는데 잘못하면 나중에 수술할 수도 있는 부위라고 한다. 이번 대회에는 더 이상 못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오세근에 대해선 "순간적인 충격을 받아 머리가 띵한 현상을 받은 것으로 안다. 회복이 될 것 같다고는 하는데 1시간 정도는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오는 3일 오전 3시 슬로베니아와 3차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