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KBS 2TV ‘왕가네 식구들’이 50%대에 육박하는 기록을 세우며 시청률 고공행진 속에 종영했다.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청률이다. 하지만, 뜨거운 인기에도 불구하고 막장 논란과 불편한 가치관에 대한 비난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막장 전개, 가부장제 가치관 강화
소위 가족드라마를 지향하는 KBS 2TV의 주말드라마의 철칙은 구세대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대가족제도 속의 인물 구성을 바탕으로, 가부장제 등의 구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것이 이 시간대 드라마의 특색이다. ‘왕가네 식구들’ 또한 이 같은 KBS 주말드라마의 공식에 철저히 부합했다.
문제는 며느리 오디션이나 위장 납치, 부부강간 등의 개연성 없이 자극적 소재를 늘어놓는 막장식 드라마 진행이다. 특히 납치나 강간 등 범죄에 해당되는 사건 진행을 유머로 풀어놓는 것은 공영방송이란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행태로 지적받았다.
편견의 확대 재생산도 심각했다. 택배, 경비, 굴착기 기사 등에 대한 직업을 천시하며, 사업가나 교사는 우월시하는 기성세대의 편견을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당연한 듯 표현했다. 학력 차별이나 경제적 계급 차별 또한 적나라하게 다뤄졌다. 이 같은 편견이 물론 긍정적으로 그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것이라고 깨달을 만큼의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차별과 편견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데 훨씬 가까웠다.
비합리적인 가부장제의 강화는 마치 KBS 가족 드라마의 존재 이유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왕가네 식구들’ 또한 가부장제의 해체를 우려하며 가부장적 시각에서 캐릭터가 표현되고 스토리가 전개됐다. 표면적으로는 사위를 학대하는 장모, 경제력에서 우위에 선 아내, 시아버지와 며느리 갈등, 재혼 가정의 충돌 등 새롭게 부상하는 가족문제를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갈등을 소재로 했을 뿐, 단순히 갈등의 원인을 개인의 악행으로 취급하고 시대와 시스템의 문제에는 무관심했다.
보다 거칠게 표현하면 이 모든 문제는 철저히 가부장적 가치관을 따르지 않은 자의 불찰로 해석된다. 자신의 욕망을 앞세우고 희생을 거부하는 여성상은 천하고 부정적인 캐릭터로 철저히 이해받을 구석을 차단해 그렸다. 반면 순종하고 희생적인 여성상으로 표현된 순정은 한없이 긍정적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순정은 가부장적 가치관에 부합되면서도 남성에게 짐이 되길 거부하는 남성 판타지에 가까운 여성이기까지 했다.
남성 또한 마찬가지다. 가족부양의 의무를 성실이 이행하는 남성과 그에 반대되는 남성으로 이분법 됐다. 혼전 동거는 남성에겐 비난 요소가 아니었다. 혼전 아이까지 둔 민중은 죄책감 없이 수박의 혼전 동거를 비난한다. 이 드라마가 혼전 임신으로 결혼하는 커플을 두 쌍이나 설정한 것에 비해 수박의 혼전 동거는 그토록 악행으로 그려진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드라마가 각종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막연한 이해와 용서인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민중은 자신이 차별한 재혼 상대의 딸이 친딸임을 알고 순정을 찾아 나선다. 자신의 인격적 결함에 대한 반성이 아닌, ‘차별했던 소녀가 사실은 친딸’이라는 것이 해결방법이라면, 결국 재혼가정의 자녀 양육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역설과 다를 바 없다. 시아버지와의 갈등과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광박이의 문제도 시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으로 해결해 문화 충돌의 통찰과 성숙한 해결법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드라마는 등장인물의 갈등을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낸다. 이해와 용서는 그저 허울일 뿐이다. 감상적인 해결이 아닌, 편견을 바로잡고 자신의 원초적 욕망을 억누르며 상대를 배려하는 인격적 성숙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가정 갈등과 비합리적이고 부도덕한 인물들의 몰상식한 행동을 유머로 풀어낸다는데 있다. 작가는 철저히 기성세대 무비판적 편견에 영합해 드라마를 풀어내고 ‘그저 웃고 보자’는 식으로 응당 불편해야 할 소재의 불편함을 걷어내 문제의식을 흐린다. 드라마에 대한 비판 또한 ‘장난인데 뭘 그래’라고 말하는 듯하다. 물론 그것은 시청률에는 도움이 되는 전략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지상파 드라마가 이래도 좋은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