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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13일 개봉

조종림 기자  2014.02.10 11: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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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조종림기자]  13일 개봉하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은 오랜만에 프랑스식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유쾌한 소극이다. 

작가, 비평가, 기자, 카피라이터 등 전방위적 ‘글쟁이’로만 살아온 프레데릭 베그베데(49)의 연출 데뷔작인만큼 굉장한 영화적 완성도와 깊이를 지녔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촘촘한 구성과 폐부를 찌르는 공감 대사들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이다. 윤리, 제도를 넘어서는 사랑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관념과 체험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현실과 철학이 결합한 사유를 해볼 수 있게 해준다. 

감독이 자전적 소설인 1997년 작 ‘사랑은 3년 지속된다(L’amour dure trois ans)’를 스크린으로 옮긴만큼 에피소드는 현실감이 넘치고 캐릭터들도 생생하다. 2002년 12월 르피가로로부터 ‘향후 10년을 빛낼 유망하고도 가장 빼어난 작가’ 10인 중 한 명으로 꼽혔고, 9·11 테러를 소재로 희생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재현해낸 ‘살아있어 미안하다’로 2003년 프랑스 6대 문학상 중 하나인 엥테랄리에 상을 받았다. 필력과 예리한 관찰력에서 나온 리얼한 묘사, 더불어 상황을 꿰뚫고 종합하는 통찰력이 대단하다. 프랑스인에게는 삶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남녀상열지사’를 놓고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사건들, 매력적 담론을 좇다보면 어느새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결혼이 파탄 난 30대 무명 평론가 마크(개스파드 프로스트)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소설을 필명으로 출판하게 된다. 그 즈음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사촌 앙트완(니콜라스 베도스)의 아내인 사진가 알리스(루이즈 보르고앙)에게 반하고,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마크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을 혹평하는 알리스에게 자신의 사랑관이 들킬까봐 노심초사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출판사 편집장 프란체스카(발레리 르메르시에)는 원작자의 정체를 밝혀버리면서 파국을 몰고 온다. 

“사랑은 현실이란 햇살이 비추자마자 소멸하는 안개야”, “1년째엔 가구를 사고 2년째엔 가구를 재배치하고 3년째엔 가구를 나누죠”, “21세기의 사랑은 답없는 문자 메시지에요” 같은 지적이면서도 시적인 정의는 한동안 음미할 거리를 준다. “사랑은 짧은 시일에 변치 않고 심판일까지 견디어 나가느니라”와 같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크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묘약의 약효도 3년이었다”같은 시대를 넘나드는 인용도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이혼법정 풍경, 핑크색 이혼서류를 사용하는 판사의 “이제 서로 미워하셔도 됩니다”라는 판결문 같은 유머러스한 대사, 신도가 사라진 프랑스 가톨릭교회에서 장례식과 결혼식 집전 전문을 자처하는 웃긴 신부, 동양에서는 장례식에서 흰옷을 입는다며 흰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젊고 섹시한 태국 출신 율리아(폼 클레멘티프), 삼성로봇청소기를 ‘스타워즈’의 로봇 ‘R2D2’라 부르며 하는 대화, 흰 토끼들과 서퍼 소녀 등 약간의 판타지와 상상까지 이래저래 코믹한 요소를 잘 섞어 넣은 것도 재기발랄하다. 

젊은 태국여자를 후처로 들이는 프랑스를 위시한 북서유럽의 최근 풍습, 중국식당과 홍콩밴드, 중국인 커뮤니티 등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더욱 진화한 현 파리의 풍경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지난해 3월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프랑스에서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할 수 있다.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여자들을 품평하며 음담패설이나 즐기는 ‘찌질이’ 삼총사인 주인공 마크와 친구들인 장 조지(조이 스타), 피에르(조나단 랑베르)의 한담 같은 국경을 초월한 남자들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전설적인 영화음악가 미셸 르그랑(82)이 직접 출연해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은 기념비적이다. 극중 마크에게 영감을 주는 노래들을 만들었다. 알리스와 사랑에 빠지는 연결고리가 돼주는 영화 ‘당나귀 공주’(1970)의 음악도 담당했다. 200곡이 넘는 영화와 TV음악, 뮤지컬을 작곡했고 오스카상에 13번 노미네이트돼고 3번 수상했다. 그래미상도 5번이나 수상한 어마어마한 대가다. ‘쉘부르의 우산’(1965),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68),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1983) 등 그가 참여한 작품만 이루 다 거론하기도 힘들다. 

TV토론에 나와서 사랑에 대한 자신의 탐구를 얘기하는 작가들과 마크 전처의 새 애인으로 나와 웃음을 안기는 마크 레비(53) 등은 실존하는 프랑스의 예술가와 지성들이다. 베그베데의 프랑스 문화계에서의 인맥을 엿볼 수 있고, 그들의 참여가 현지에서는 꽤 화제가 됐을 듯 싶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을 진지하면서도 코믹하게 표현해낸 개스파드 프로스트(39)는 감독이 자신과 닮은 배우를 찾은 끝에 첫 주연을 맡게 됐다. 실제 베그베데 감독은 극중 마크가 필명을 연상할 때 떠올리는 흑백필름 속의 러시아 병사로 잠깐 출연했다. 실제 주연배우보다 잘생긴 외모로 배우노릇도 잠깐씩 했다. 소녀 서퍼는 베그베데 감독의 실제 딸이다. 마크와 알리스가 후에 낳는 딸이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 위해 미리 나타났다는 설정으로 읽혀진다. 

시원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인 알리스 역은 최근 프랑스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 중 한 명인 루이즈 보르고앙(33)이다. 180㎝의 늘씬한 키에 지성미 넘치는 마스크를 가진 그녀는 모델과 기상캐스터로 인기를 끌다가 배우로 전직했다. 최근 국내 개봉한 ‘베일을 쓴 소녀’(2013)에서 못된 수녀원장으로 출연해 연기변신을 꽤하기도 했다. 지난해 국내 개봉한 베스트셀러 원작의 ‘해피 이벤트’(2011)에서는 갑자기 엄마가 된 대학원생 역을 맡아 전라 베드신까지 사실적 연기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마크 아버지의 후처가 된 율리아는 미국판 리메이크 ‘올드보이’에서 ‘행복’ 역으로 나온 폼 클레멘티프(28)가 연기한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프랑스 국적자로 러시아와 프랑스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유라시안이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얘기는 소위 ‘사랑 호르몬’이 18~30개월밖에 유지되지 않는다는 최근 과학연구에서 나왔다. 세계적으로 결혼 4년째 파경할 확률이 가장 높다는 보고도 있다. 그럼에도 또 사랑을 찾아나서는 것이 인간의 본성 내지 본능이다. 

과연 또다시 불타는 사랑에 빠져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마크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시니컬한 편집자 프란세스카는 “알리스가 예뻐서 좀 오래가긴 하겠지만 마크가 알리스를 차는 순간 두 번째 소설 나오면 대박인데”라며 입맛을 다신다. TV에서는 “사랑을 3년밖에 하지 않는다는 건 육체적인 사랑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흘러나온다. 그야말로 열린 결말이나 낙관할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