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의 일차적인 임무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런데 학교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학교 현장은 국정감사 때가 되면 각종 감사자료 제출로 학생 교육에 지장을 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등 교육 당국은 교원의 행정업무를 줄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학교현장 교원이 각종 자료 제출 업무 등으로 학생 교육에 여전히 지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교총이 시행한 ‘국감 자료요구 실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교원 10명 중 9명이 국감자료 요청을 ‘당일 회신 또는 다음날 회신’ 등 매우 급하게 받았다고 응답했다.
국정감사 자료 요청 중 ‘교육행정기관에 요구해도 되는 자료를 학교에 요청한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이 10명 중 9명에 달했다(매우 그렇다 44.0%, 다소 그렇다 44.3%).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식 교육통계에서 조사하지 않고 기록을 찾기 힘든 수년치 자료를 요구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73.7%나 됐다.
또한 현장 교사들은 기간이 5년 이상 지나 수합이 어려운 자료뿐만 아니라 10년 이상이 지나 파악하기도 힘든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런 실태는 교육부가 교원의 행정업무를 줄여주기 위해 행정보조인력 증원, 각종 자료의 공유시스템 도입 등 업무경감 계획을 추진했지만, 학교현장의 어려움은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교원이 학생 교육에 전념하지 못하고 각종 행정업무에 시달리는 상황이 계속되면 교원의 직무 의욕 상실은 물론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도 우려된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
국정감사로 인한 학교현장의 몸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사기관인 국회나 시도의회 등이 자료제출 요구 전에 이 자료가 학교현장에 어느 정도 부담을 줄 것인지에 대한 필터링이 필요하다.
또한 국회, 지방의회, 교육부, 시도교육청 등이 학교현장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내용이 어느 정도 적절한지를 평가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활성화해야 한다. 감사기관들의 무분별한 자료 제출 요구를 평가, 견제할 수 있게 교육 전문기관 또는 관련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교육행정기관은 기존의 각종 통계 시스템을 활용해 제출 자료를 작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상급 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사자료 제출 요구가 오면 학교현장에 공문을 이첩해 수합하는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며칠 후면 국회의 국정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벌써 과다한 국감 자료 제출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대로 방치할 일은 아니다.
교원이 행정업무에 시달려 학생 교육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국정감사는 학교 교육을 더 잘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학교에 부담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현장 교사들이 ‘올해 국감 자료 요청으로 수업시간에 자율학습을 시킨 적이 있느냐’는 문항에 37.6%가 ‘있다’고 답했다. 초등교사 42.6%, 고교 교사 34.4%, 중학교 교사 30.7%가 국감자료 때문에 자율학습을 시키고 있는 게 학교 현장의 실상이다.
학교 현장 교사들은 국정감사 계절이 되면 불만이 가득하다. 교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이 행정업무에 선생님을 빼앗겨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학습권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교원의 행정업무 경감을 위한 법을 별도로 제정해서라도 교원이 행정업무로부터 해방돼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눈길을 더 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올해 국정감사가 교원의 행정업무를 줄여 교원이 학생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든다면 가장 성공적인 국정감사를 한 국회로 기억되지 않을까.
글: 한재갑 교육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