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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갑 교육칼럼] “일반고 살리자고 자사고 죽여서야”

이상미 기자  2013.08.15 13: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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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지난13일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2318개 고교 중 65.7%(1524개교)를 차지하는 일반고에 대한 지원은 늘리고, 자율고와 특목고에 주던 특혜를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부 방안에 따르면, 일반고에 4년간 평균 5000만 원씩 교육과정 개선 지원비가 지급되고, 교육과정 운영 자율권이 확대된다. 일반고생이 특성화고로 전학 갈 수 있는 길도 열어준다. 반면 특목고와 자율고(자율형사립고, 자율형공립고)에 대해서는 규제가 강화된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5학년도부터 평준화 지역 자율고는 중학교 내신성적과 관계없이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사회통합전형도 폐지된다. 하지만 비평준화 지역의 자율형사립고와 옛 자립형사립고(민족사관고, 상산고 등)는 기존 학생선발권을 인정한다.

또 전국 116개 자율형공립고는 지정기간 5년(2018년)이 지나면 일반고로 전환되고, 외국어고가 이과반을 운영하는 등 특목고가 지정목적을 위반하면 성과평가 기한(5년) 이전이라도 지정을 취소한다.

교육부 방안은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특목고와 자율고를 강력히 규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목고와 자율고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면서 일반고 공동화 현상이 초래됐고, 학교 서열화가 심해졌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교육부가 이명박 정부 때 추진했던 자사고 육성 정책이 실패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그러나 고교 서열화와 일반고 위기 해결을 위해 특목고와 자율고를 무력화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특목고와 자율고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면 일반고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교조적 평등주의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 고교 평준화가 안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고 수월성 교육을 위해 특목고와 자율고를 허용한 점을 고려하면 일반고를 살리자고 자율고를 죽일 일은 아니다.

안정성과 일관성을 상실한 정책으로 학교와 학생, 학부모가 또다시 혼란과 고통을 떠안게 됐다. 당장 자율형사립고는 “교육부 발표는 일반고를 살리자는 것인데 내용을 보면 일반고를 살리는 것이 아닌, 자사고를 죽이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또 "성적 제한을 없애고 선발권을 폐지한 채 건학이념을 강조하는 것은 자사고 문을 닫으라는 얘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서울 등 평준화 지역의 자율형사립고 39개교는 곧 일반고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 내신 성적 상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추첨 선발했던 학교가 성적 제한을 없애면 ‘성적이 좋은 학생이 모인 학교’는 ‘등록금만 3배 비싼 학교’로 전락하게 된다. 대규모 자율고 지정 반납 사태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또한 교육부는 고교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 “자율고 제도개선을 통해 고교교육을 수평적으로 다양화 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고교 서열화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특목고와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자율형사립고(옛 자립형 사립고)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수한 학생들은 특목고나 전국 또는 광역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자사고에 눈을 돌릴 것이다. 이럴 경우 특목고와 전국단위 자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 증가도 우려된다.

교육부의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은 고교체제 개편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정부 때 자사고를 만든 지 4년 만에 또다시 학교체제를 뒤흔들어 학교현장과 학생, 학부모는 혼란과 고통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런데도 정작 교육부는 사과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질 않고 있다. 이번에 교육부가 내놓은 특목고와 자사고를 무력화해 일반고를 살리겠다는 방안도 벌써 논란이 많다. 교육부는 잘못된 정책을 책임지는 자세와 함께 더 깊이 고민해 정책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