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은 일본학자들이 독일어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을 유치원으로 번역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유치원’ 명칭은 일본인들이 자기 자녀들의 유아교육을 위해 1897년 부산에 세웠던 ‘부산유치원’에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유치(幼稚)라는 단어에는 `나이가 어리다'는 뜻과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는 후자의 뜻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유치원' 명칭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유치원’ 명칭은 일제강점기의 잔재이다.
중국은 1945년 해방 이후 유치원 명칭을 ‘유아원’으로 변경해 일제 잔재를 청산했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황국신민(皇國臣民)’ 의도가 담긴 ‘국민학교’ 명칭을 19996년부터 초등학교로 바꿨을 뿐 유치원 명칭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유치원’ 명칭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4년 유아교육법 제정 당시 ‘유치원’ 명칭을 ‘유아학교’로 바꾸자는 요구가 많았다. 하지만 일부 단체의 ‘밥그릇’ 지키기가 발목을 잡았다.
보육계는 유치원이 ‘유아학교’ 명칭을 사용하면 원아를 ‘유아학교’에 뺏길 것을 우려했다. 또 일부 사립유치원은 유아교육법 제정은 찬성하면서 ‘학교’ 명칭 사용은 반대했다. 그들은 '학교'로 명칭이 변경되면 학교법인으로 전환돼 재산권 제약은 물론 교육당국의 관리감독과 간섭이 많아지는 것을 꺼렸다.
현행 교육기본법 제9조(학교교육)에는 “유아교육·초등교육·중등교육 및 고등교육을 하기 위하여 학교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유치원’은 유아교육을 하기 위한 ‘학교’이다. 그런데도 ‘유치원’은 ‘학교’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젠 유치원이 '학교' 명칭을 사용토록 해야 한다.
‘유치원’ 명칭을 ‘유아학교’로 변경하는 데에는 명칭변경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유아교육의 공교육 기반 구축을 위해서는 '유아학교'로 바꾸는 게 좋다. 지금은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보육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한국의 3~4세 취학률은 82%에 이를 정도이다. 이제 유치원은 공교육의 보조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하나의 공교육 기관이 돼야 한다.
‘유아학교’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도입해야 한다. 유아교육과 보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확대되고, 유치원과 보육시설의 공통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이 적용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유아학교’로 개편해 초등학교와의 교육적 연계성을 높이는 게 좋다.
물론 명칭만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고 지적한 것처럼 ‘유아학교’라는 명칭과 형식도 중요하지만, 교육과정, 교원, 교육시설 등과 같은 교육의 내용도 함께 갖춰나가야 한다.
그간 유치원은 유아교육법, 보육은 영유아보육법으로 관련법이 이원화돼 명칭은 물론 설립유형, 대상아동, 운영형태, 비용부담, 교사자격 및 양성 등에 있어 혼란이 초래됐다. 또 정부부처의 기능도 중복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5월부터 정부가 ‘유보통합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켜 운영 중이다.
이번만큼은 교육 수요자의 관점에서 ‘유치원’, ‘어린이집’ 등을 ‘유아학교’로 일원화해 공교육 기반을 확고히 해야 한다. ‘유아학교’ 체제를 도입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현 가능성 높은 사안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아비를 아비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학교를 학교로 부르지 못하는 현실을 더 내버려둬서는 곤란하다.
글; 한재갑 교육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