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질투는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느끼지 않지만 가까운 사이나 경쟁관계에서는 잘 나타납니다. 가령,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이 자동차 회사에서 인정받는 회사원을 시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근처에 동일 업종의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이 잘되면 싫고 불안해지지요. 이런 시기 질투가 심해지면 투기로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을 보면 ‘사랑은 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투기하지 않고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투기는 마음의 시기 질투가 심해져 남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이 잘되거나 사랑받을 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시기 질투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 질투가 있으면 자신보다 부유하며 능력이 많은 사람을 보면 자존심이 상합니다. 같이 입사한 동료는 빠르게 승진하는데 자신은 아직도 말단이라면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힘이 빠지고 일할 의욕까지 상실하지요. 이렇게 시기 질투가 있으면 낙심이 됩니다.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이 깊어지지요.
그러나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의 기쁨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잘되니 낙심이 되고 힘이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곧 ‘자기(自己)’가 살아 있다는 뜻이지요. 상대보다 더 사랑과 인정받고 싶은 자아가 살아 있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시기심이 생깁니다.
이런 시기 질투가 심해지면 악한 말과 상대를 해하는 악한 행동까지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투기입니다. 투기는 악하고 추한 마음의 죄성이 겉으로 드러난 현저한 육체의 일이기 때문에 구원받기 어렵습니다(갈 5:19∼21).
그 예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적장 골리앗에게서 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3미터 가까운 장신(長身)에 청동갑옷으로 무장한 블레셋 최고의 전사 골리앗이 40일 동안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지요.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좌불안석 떨고만 있었습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다윗이 하나님을 모욕한 적장을 물맷돌로 단번에 쓰러뜨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대승리를 거두고 다윗은 일약 국가적 영웅이 되어 백성의 사랑을 받지요.
사울 왕은 뒷날 다윗을 군대 장관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시기 질투를 자극하는 일이 발생하고 맙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는 어느 날 수많은 백성이 나와 대환영을 하지요.
이때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 하며 노래를 합니다. 이에 사울은 분개하지요.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며 그날부터 다윗을 주목합니다(삼상 18:8~9).
그리고 악신으로 고통받는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단창을 던지는가 하면,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도록 음모를 꾸미고 최고의 무사들을 시켜 살해하려고 한 일도 있지요. 이러한 사울 왕은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욥기 4:8을 보면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했고, 잠언 14:30에는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자신이 행한 악은 부메랑처럼 고통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시기, 질투, 투기는 백해무익한 것임을 알아 신속히 이를 버리고 상대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