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면을 보아도 선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사고로 쉽게 남을 판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컨대 공원에서 낯익은 남녀가 다정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볼 경우에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하게 바라봅니다.
반면 불순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둘이 어떤 사이일까?”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좋지 않은 소문까지 퍼뜨리지요. 선한 생각은 평안과 생명을 주지만, 악한 생각은 백해무익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5절을 보면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한다’ 했는데 악한 것이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볼 때 하나님 뜻이 아닌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상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은 가난하게 사는데 주변에 풍족하게 사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부요한데 나는 뭔가. 그가 망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것이 바로 악한 생각입니다. 이처럼 상대가 불행해지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 자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크리스천으로서 합당치 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이때 마음에 악이 있으면 ‘어떻게 저런 곳에 출입하지?’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선한 마음이 있으면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좋은 쪽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고 영적인 사랑이 있는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전해 들었다 해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4:12에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했으니 남을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끝으로 하나님 뜻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덕이나 양심은 선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뜻과 반대되는 것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세상에서는 원수 갚는 것을 의롭게 여기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악이라 하시고 용서하라 하십니다(마 5:44, 롬 12:19~20).
절대적인 선은 오직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여기서 어긋난 것은 다 악이며 죄이지요.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던 사람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거짓되고 악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나는 죄인이었습니다."라고 회개하며 자백하는 것이지요.
앞에서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것은 다 죄이며, 악이라고 하였는데, 죄와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둘을 나무에 비유하면 ‘악’이 보이지 않는 땅속 뿌리와 같다면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뿌리가 있기에 줄기와 잎, 열매가 나오듯이 죄는 악에서 나오는 산물입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욕을 하며 폭력을 행했습니다. 이는 마음에 있는 미움이라는 악이 ‘욕’과 ‘폭력’이라는 행함 곧 죄로 나온 것입니다. 마음에 악이 있다고 해도 교양이 있거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절제하면 죄로는 나오지 않지요. 그러나 마음속에 악이 있기 때문에 성결하다 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의 악까지 다 버려야 성결하다 인정받고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고 범사에 선한 생각을 함으로 영적인 사랑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장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