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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사랑이 남편을 죽였다”

내 아들의 사랑이 남편을 죽였다…대남공작원 아내(차란희 지음·푸른향기 펴냄)

이상미 기자  2012.08.04 12: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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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들을 사랑한 처녀가 말할 수 없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그 아이, 나타샤였다. 자기 나라의 멋있는 총각들도 많은데 왜 하필 내 아들을 꼬여서 우리 집안을 이토록 무서운 진창 속에 빠뜨렸는가. 나는 남편 앞에서 그 처녀를 수없이 욕하고 미워했다. 그런 나를 다독이며 남편이 말했다. ‘사랑한 것이 무슨 잘못인가? 이왕 이렇게 됐으니 아들을 용서하자. 그리고 둘이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다.’”

전 대남공작원의 아내가 남편을 잃게 된 통한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다. ‘내 아들의 사랑이 남편을 죽였다’다. 태권도 사범인 남편과 함께 해외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북의 중산층인 저자의 가족이 아들의 사랑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평양당국으로부터 쫓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남편이 죽어야 했던 비극을 담았다.

북에서는 유학생의 연애를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외국인과의 사랑은 정치적으로 처벌받을 중대 사안이다. 그러나 당국의 신임을 받으며 16년간의 재외 생활을 하던 저자의 가족은 외국인 여대생과 사랑에 빠진 대학생 아들로 인해 하루아침에 도망자의 신세로 추락한다. 아들을 잃은 후 저자와 아들은 제3국의 시민권을 얻어 정착했다.

책에는 사랑이 죄가 되는 답답한 북의 체제와 평양의 실상이 다큐멘터리처럼 묘사돼 있다. 저자의 아들은 자신의 선택이 조국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과 부모를 몰락시킬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연인과 잠적했고 그 결단을 후회하지 않았다. 저자와 남편 또한 북쪽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이 죄가 돼 버린 아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용서했다.

그동안 탈북자들의 증언은 많았지만 국정원과 하나원에 머무는 동안 적응교육을 받음으로써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북한 체제를 필요 이상 부정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자 차란희는 오랜 재외 생활로 국제사회와 대한민국의 실상을 알고 있었고 북한 체제의 문제점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도 조국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그려낸 평양과 북한의 모습은 지금까지 접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북한 사람들도 성형수술을 하고 뜨거운 연애를 하며 애인 없는 유부녀는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얘기 등 그들도 다를 바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궁금해 하는 평양의 모든 것들을 저자의 육성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조국의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창창한 미래를 희생시킬 용기가 없었다. 아들을 북조선 사람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묻고 싶었다. 내 나라를 버리고 내 어머니를 버리고 자식을 선택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