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저축은행 4곳(솔로몬, 미래, 한국, 한주)의 불법 대출 규모가 1조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저축은행 '오너'들의 도덕적 해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대검찰청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이 2차 영업정지 저축은행 수사와 관련해 김찬경(56) 미래저축은행 회장과 임석(50)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윤현수(59) 한국저축은행 회장, 김임순(53) 한주저축은행 대표 등 11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솔로몬, 미래, 한국, 한주 저축은행 대주주 및 경영진의 불법 대출 규모는 총 1조2882억원으로 이 가운데 부실·배임대출 4538억원, 한도초과 대출 2864억원, 대주주 자기대출 548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은행 자금 횡령 992억원 등 대주주의 횡령·배임 규모는 1179억원에 달했다. 금융당국의 구조조정을 앞두고 몰래 중국 밀항을 시도하다 붙잡힌 김 회장의 횡령 및 배임액은 71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임석 회장 195억원(횡령), 윤현수 회장 55억원(횡령, 배임), 김임순 대표 216억원(횡령) 순이었다.
김 회장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를 앞둔 시점에 직원들을 등한시한 채 도피성 해외 밀항을 시도했다.
특히 중국 밀항을 시도한 당일(5월3일)에도 미래저축은행 법인 자금 203억5000만원(5만원권 135억원, 자기앞수표 68억5000만원)을 무단 인출한 뒤 동생과 채권자 등에게 교부하는 방법으로 임의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채무 변제, 도피 자금 등을 마련할 목적으로 미래저축은행이 소유한 5개 대기업 상장사 주식 266억여원(22만3274주)과 법인 자금 203억원 등 총 469억원도 무단으로 인출해 쌈짓돈 쓰듯 했다.
김 회장은 또 은행 소유의 미술품들을 임의로 처분하며 남몰래 '재테크'를 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9월 서울옥션에 20억원을 대출하면서 은행이 소유한 앤디 워홀의 작품 '플라워(구입가 25억원 상당)'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구입가 21억원 상당)'을 담보로 제공하는 등 2006년부터 미술품 5점을 개인적으로 처분해 은행 돈 46억여원을 빼돌렸다.
또 지난해 유상증자에 145억원을 투자한 하나캐피탈 측에는 투자금에 대한 담보로 5억9000만원 상당의 박수근 작 '노상의 여인들'을 제공했다. 임석(50)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에게는 로비 명목으로 도상봉의 '라일락', 이중섭의 '가족' 그림을 건네기도 했다.
은행의 증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루이스 부르주아의 '더 렉토리'(15억원) 등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대출 담보로 맡긴 그림 11점을 솔로몬저축은행 등에 개인 담보로 맡겨 미래저축은행에 83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
검찰 관계자는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은 200억여원을 현금으로 회수했다. 나머지는 아직 못 찾았다"며 "은행이 입은 손해의 규모는 계속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아내의 외제차량과 고가 빌라 구입 등의 과정에서 편법을 썼다.
2006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아내의 고문료 명목으로 씨앤씨캐피탈에서 자금 10억8000만원을 횡령했다. 또 캐피탈 측에서 아내의 벤츠 승용차(S600, 시가 2억6600만원)의 매월 리스료 655만9000원을 부담토록 하고, 법인카드를 제공하게 하는 등 8억원 상당의 피해를 끼쳣다. 또 2009년 7월 시가 52억 원 상당의 청담동 호화빌라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씨앤씨캐피탈 측이 금융기관 대출을 통해 구입 자금의 30억원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씨앤씨캐필탁은 현재까지 이자로만 2년 9개월간 6억8000만 원을 지급했지만 대출금은 아직까지 변제하지 못했다.
윤 회장은 이와 함께 올해 3월 예정된 금융위원회의 경영개선계획 등 이행 점검에 대비해 한국저축은행의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가조작까지 일삼았다.
고가매수, 허수매수 등 총 158차례의 시세조종 주문을 통해 계열사인 진흥저축은행 주가를 2350원(2012년 2월16일 종가 기준)에서 3960원(2012년 2월29일 종가)까지 약 68.5% 상승시켜 353억4072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뒤늦게 '추격 매수'에 나선 개미 투자자들은 결국 나중에 손실을 봤다.
검찰 관계자는 "특히 범행 기간 중 이상 징후를 파악한 한국거래소 및 금융감독원이 공문을 발송해 경고를 했음에도 주가조작을 강행하는 대담함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임순 회장은 이른바 가짜 통장을 만들어 고객 예금을 빼돌린 케이스다. 검찰 수사에서 가짜 통장으로 적발된 건 김 회장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는 은행창구에 있는 특정 단말기의 은행 전산 프로그램을 '테스트 모드'로 전환한 뒤 단기 정기예금 고객의 예금을 '테스트 모드'로 처리토록 했다.
이렇게 되면 예금주의 통장에만 돈이 입금된 것처럼 표시되고 실제로는 해당 금액을 정상 입금처리되지 않게 된다.
김 대표는 이러한 수법으로 올해 2월~5월까지 예금주 407명의 예금 180억여원을 임의로 빼돌렸다.
검찰 관계자는 "테스트 모드는 직원 전산교육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프로그램"이라며 "위 프로그램으로 입금 처리하면 정상 '온라인 모드'와 달리 예금주의 통장에만 입금 표시되고, 은행 전산 상에는 입금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저축은행 업계 1위인 임 회장은 지난해 7월 평소 친분이 있는 금감원 검사 무마 명목으로 미래저축은행 김 회장으로부터 현금 14억원과 1㎏짜리 금괴(골드바) 6개, 그림 2점을 수수한 사실이 적발됐다.
또 미래저축은행과 상호대출을 통해 퇴출위기를 모면키로 공모하고 지난해 9월 김 회장의 명의차주인 업체 3곳에 대한 적정한 대출심사나 평가 없이 300억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은행 대주주의 횡령이나 불법 대출 혐의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함에 따라 앞으로는 비자금 조성 의혹과 용처(用處)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대주주들이 빼돌린 자금이 정·관계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자금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찬경 회장이 임석 회장에게 넘겼던 현금, 그림, 금괴는 임 회장이 보관하고 있다가 일부를 제출했다"며 "임 회장이 검사 무마 명목으로 금감원 직원 등에 로비를 지시한 정황과 관련해서는 수사를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