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삼 기자 2012.05.22 18:44:26
검찰이 2010년 2월에 이어 2년3개월여 만에 다시 한 번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증거 확보에 실패했던 첫번째와 달리 이번에는 당원 명부가 검찰에게 넘어가면서 안 그래도 내분에 시달리고 있는 통합진보당이 더 큰 충격에 빠졌다. 2년 전 검찰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등 공무원들이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에 당비를 납부했다는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KT인터넷데이터센터를 압수수색했지만 결국 핵심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오병윤 현 당원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원 명부와 투표기록이 담긴 하드디스크 2개를 외부로 반출하는 데 관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2번째 압수수색에서는 검찰이 투표서버관리업체 '스마일서브'에서 당원 명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13년 동안 입당·탈당한 20만명이 넘는 당원들의 기록이 검찰 손에 넘어갔다.
◆檢, 통합진보당 서버 3개 확보…분석 주력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상호)는 22일 당원명부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컴퓨터 서버 등을 확보하고 자료를 분석 중이다.
당초 검찰은 '스마일서브'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직원 입회하에 통진당 관련 서버 27개에 대한 복사(이미징)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원들의 거센 반발로 장시간 수색에 난항을 겪자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 받아 핵심 서버 3개를 통째로 가져왔다.
검찰은 이 서버에 통합진보당의 당원명부와 선거인명부, 비례대표 경선 투·개표 기록, 투·개표 내용이 기록된 데이터베이스 등 경선 관련 자료가 담겼을 것으로 보고 이미징 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은 당원명부와 선거인명부를 확보하면 이를 교차 대조하면서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투표율 조작은 없었는지, 유령당원이나 동일 인터넷(IP)주소로 중복 투표가 이뤄진 것은 아닌지 여부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통합진보 내분 속에 검찰만 어부지리
사실 이번 압수수색 성공은 검찰의 어부지리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통합진보당 내 구 당권파(민족자주계열)와 신 당권파(국민참여당, 민중민주계열 등)가 당내 비례대표 경선 부실·부정사태 수습방안을 놓고 한달 가까이 치고 받았고, 이 틈을 활용한 검찰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당원 명부를 챙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 당권파와 신 당권파 모두 이번 당원 명부 압수수색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보수성향 시민단체 라이트코리아가 지난 2일 심상정·유시민·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경선규정 관련자를 업무방해 및 정보통신망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서로 잘잘못을 따지느라 검찰 수사에 제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뺏긴 당원 명부를 통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당원으로 활동해왔던 공무원들의 신상정보가 드러날 경우 공무원법 위반으로 모두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 진영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국 이번 총선을 앞두고 부정·부실 경선을 실시한 구 당권파나 이 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신 당권파 모두 이번 당원 명부 유출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이를 감안한 듯 신 당권파와 구 당권파 모두 서로를 향해 겨누던 총구를 검찰 쪽으로 돌리고 있다.
신 당권파인 강기갑 혁신 비대위원장은 22일 BBS라디오 '고성국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당원 명부는 정당의 심장 같은 것으로서 모든 당원들의 정보와 활동들이 다 들어가 있다. (검찰이)아마 전부 다 복사해서 여러 가지로 탄압에 이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혁신 비대위에 반기를 들고 당원 비대위를 만든 구 당권파 소속 오병윤 당선자 역시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당원명부를 압수당한 상황에서 이 비대위니 저 비대위니 (갈등은)넘어서야한다"며 "모두가 함께 당을 지키고 당원의 자존을 지키는 일에 함께 나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양 진영은 압수수색 지시를 내린 권재진 법무부장관을 함께 찾아가 한 목소리로 항의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강기갑 혁신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 과천 정부종합청사 5동에 위치한 법무부장관실에 심상정 전 공동대표를 비롯해 노회찬·김선동·강동원·김미희·김제남·오병윤·이상규·박원석 등 지역구·비례대표 당선자와 함께 등장했다.
특히 혁신 비대위와 신당권파를 비판해왔던 구 당권파 소속 오병윤 당원 비대위원장과 김미희 대변인, 그리고 김선동·이상규 당선자가 이날 강기갑 혁신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신 당권파와 함께 행동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의도치 않은 데탕트, 오래 가지 않을 듯
이처럼 양 진영이 검찰 수사라는 거대한 외부 충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협력하는 듯 보이지만 갈등 요인은 여전히 잠재해있다.
혁신 비대위는 사퇴서 제출 기한이었던 전날까지 사퇴서를 내지 않은 이석기·김재연·조윤숙·황선 비례대표 당선자·후보자를 조만간 중앙당기위원회에 제소, 징계를 요청할 계획이다.
특히 혁신 비대위가 당기위원회에서 자신들에게 이로운 결과를 얻기 위해 당적을 옮긴 이석기·김재연 당선자를 향해 "공당의 비례대표 후보로서 온당치 못한 행위"라며 비난의 강도를 갈수록 높이는 점도 갈등 요인 중 하나다.
징계 압박이 강해질수록 당원 비대위의 대응 수위 역시 올라갈 전망이다. 이미 당원 비대위는 제명 내지 출당 조치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해석하며 여차하면 분당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제명 후 무소속이 될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와 마찬가지로 탈당 후 무소속이 될 지역구 오병윤·김선동·이상규·김미희 당선자로 꾸려진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의미다.
여러 요소들을 감안할 때 검찰 수사로 인한 의도되지 않은 '데탕트'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양 진영이 검찰 수사로 인한 일시적인 긴장완화 시기 동안 의견 접근을 이루지 못할 경우 국회 개원일(오는 30일)이 다가올수록 갈등요소가 재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당내 일각, 화해 중재안 내놔
이런 가운데 당내 일각에서는 극한 대립 양상을 보다 못해 양 진영을 직접 화해시키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이날 통합진보당 부산·울산·경남지역 당원 100명은 구 당권파와 신 당권파 간 갈등을 해결하겠다며 중재안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성명서를 내고 "혁신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당내 통합과 지도력을 높여야한다"며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과 면밀한 조사활동을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끝내야한다"고 촉구했다.
또 "출당이나 제명 등 극단적인 방법이 아닌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그 방법으로 '전 당원 여론조사' 등의 방식을 강구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전당적인 '당원 참여운동' '당원대회 소집운동'을 통해 현 사태의 해결방안과 당 쇄신방안에 관한 당원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