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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美 인플레 감축법에 고위관료 파견…WTO 제소도 ‘검토’

인플레 감축법 시행 전 미국 재무부 등 최대한 설득
WTO 제소도 고려…한미 FTA 등 통상 규범 위반
상계관세 부과도 가능…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김철우 기자  2022.08.24 08: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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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the Inflation Reduction Act) 시행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고위 관료를 급파해 미 측을 설득할 계획이다. 이와 별개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도 검토하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인플레 감축법과 관련, "이번 주나 다음 주 초에 1급 통상 간부를 보내서 미국의 의사를 확인할 것"이라며 "통상교섭본부장이 다음 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와 관련한 미국 출장길에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다이닝룸에서 이달 상·하원을 통과한 인플레 감축법에 서명하고, 보조금 지원 대상 전기차 리스트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 현지에서 판매 중인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등 주력 모델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차·기아는 국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법안 시행으로 내년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아이오닉6, EV9 등 신규 라인업을 투입해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올리겠다는 현대차 그룹의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우리 정부는 그에 앞서 미 행정부에 인플레 감축법상 보조금 지급 요건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으면서 관련 업계와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산업부는 이번 주 장관 주재로 관련 업계와의 긴급 간담회를 열고 인플레 감축법과 관련한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인플레 감축법 시행 전, 미 행정부를 최대한 설득해 우리 업계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이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입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미국 재무부가 기준을 정해야 한다"며 "가급적 우리 업계의 요구사항이 많이 반영되도록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WTO 제소도 검토하고 있다. 이 장관은 "법이 나오자마자 통상교섭본부장 명의로 USTR(미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WTO 규정 위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규정 위반 가능성과 우려를 전달했다"면서 "WTO 제소 여부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이 한미 FTA와 WTO 규범을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FTA에는 내국민 대우 원칙이 있고, WTO 규범에는 최혜국 대우 원칙이 있다"며 "이런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내국민 대우 원칙(NT·National Treatment)은 타국민과 자국민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원칙이며, 최혜국 대우 원칙(MFNT·Most Favored Nation Treatment)은 특정 국가에 부여한 혜택을 다른 국가에도 동일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업계에서도 국제 통상 규범 준수를 미국에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미국을 WTO에 제소해 승소한 사례도 있다. 정부는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LG전자, 삼성전자를 겨냥해 수입산 세탁기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단행한 것에 대해 제소했다. 지난 2월 WTO는 세이프가드가 WTO 협정에 불합치 한다고 판정하고 우리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아울러 WTO 보조금협정 규정에 따르면 특정 국가의 보조금이 상대 국가의 관련 산업에 피해를 주거나 위협이라는 것이 입증될 경우 상대 국가는 해당 제품을 수입할 때 상계관세로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이 수출 시장인 점과 동맹관계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상계 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장관은 "상당한 경각심을 갖고 이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인플레 감축법이 미국의 자국 산업 우선 경향의 첫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며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지에 대해서 아주 깊이 있게 업계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