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도영 기자] 안전자산으로 손꼽히는 일본 엔화 가치가 6년 1개월 만에 달러당 120엔대까지 떨어진데 이어 일본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지속하고 있어 당분간 엔저 현상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부정적 영향보다 더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3일 한국은행 동경사무소가 2000~19년, 2010~19년중 엔화 약세가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 결과 일본 경제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긍정적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실질실효환율 10% 하락(엔화 약세) 충격이 발생한 이후 4분기 동안의 GDP 변동을 추정한 것이다.
엔·달러 환율은 3월 들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3월 18일) 이후 120엔을 상회하면서 지난달 29일에는 124.02엔에 마감하기도 했다. 달러당 엔화가치는 2016년 2월이후 6년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원·엔 환율 역시 100엔당 1000원 아래로 내려갔다. 1일 하나은행이 고시한 원·엔 재정환율은 전장보다 1.78원 내린 993.42원으로 마감했다. 원·엔 환율은 지난달 28일 전장보다 3.66원 내린 996.55원에 마감하면서 2018년 12월 14일(995.9원) 이후 3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1000엔 아래로 내려간 바 있다.
일본 경제의 구조변화와 최근의 대외 여건을 감안할 때 이러한 엔화 약세 현상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행은 대체로 엔화 약세가 수출 및 물가를 끌어올려 경제 전체적
으로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나, 시장에서는 무역수지 악화, 소비심리 위축 등 엔화 약세의 부정적 측면에도 주목하는 모습이다.
일본은행은 엔화 약세가 수출 기업 가격 경쟁력 개선에 따른 재화 수출량 증가, 엔화기준 재화수출액 증가에 따른 기업수익 증가, 서비스 수출 증가, 소득수지(해외소득 순수취 엔화 환산액 증가) 개선, 수입비용 상승에 따른 기업수익·소비자 구매력 저하 등을 통해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 관계자는 "다만 경로별 효과에 대해 기업의 해외생산이 증가하면서 2010년 이후 긍정적 측면으로는 재화 수출 증가 효과 보다는 소득수지 개선 효과가 확대 됐다"며 "부정적 측면으로는 가전제품 등의 수입침투율 확대로 수입비용 상승에 따른 소비자물가에 대한 영향이 커졌다"고 말했다.
쿠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최근까지 엔화 약세가 일본경제에 전반적으로 플러스로 작용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환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 무역구조에 따라 변하지만, 엔화 약세가 전체적으로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을 통해 일본 경제에 플러스로 작용한다는 기본적인 구도는 변함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엔화 약세의 영향이 업종, 기업규모, 경제주체에 따라 균일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엔화 약세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실질소득 감소, 기업수익 악화 등 경제의 하방압력이 될 수도 있으나, 최근의 수입물가 상승은 엔화 약세보다는 원자재가격 상승 영향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입장이다.
최근의 엔화 약세 상황이 일본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어떠한 파급 경로에 더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긍정과 부정적 견해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한은은 "엔화 약세가 교역조건 악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수입물가 상승에 따라 무역수지 적자 고착화, 소비심리 위축 등 부정적 효과를 강조하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는 수출 확대를 통해 일본 경제에 긍정적이라는 인식이 장기간 지속 됐으나, 일본 제조업 현지화 전략 증대, 일본내 서비스업 비중 확대,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 등 경제 여건 변화로 최근 들어 수입물가 상승이라는 부정적 측면도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제약, 원자재가격 상승 등 대외 요인에 의해 수입물가가 급등하고 이는 소비자의 구매력 저하로 이어져 민간소비 위축의 부정적 영향이더 많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반면, 최근의 수입물가 상승에는 엔화 약세보다는 원유가격 자체 상승효과가 더 크며 이는 금융정책이 아니라 감세, 보조금 제공 등 재정 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한은은 "최근의 급격한 엔화 약세 흐름에 대한 일본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125엔에 근접하거나 이를 상회할 경우 금융 당국의 개입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다만 일본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 유지, 경상수지 적자 지속 등 엔화 약세 요인이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엔저 현상은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