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우 기자 2022.03.24 06:53:36
[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주째 대치 국면에서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순조로운 정권 이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23일 쟁점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으나 그로 인해 오히려 회동 성사가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는 "윤석열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었다"고 강조했지만 윤 당선인 측은 "협의한 적 없다"고 즉각 부인하며 양측의 진실공방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인 감사위원 인선, 집무실 이전 문제 등도 이견이 좁혀질 낌새가 보이지 않아 초유의 신·구권력 대치 상황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은 총재 후임으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며 당선인 측과 조율된 인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윤 당선인 측은 곧바로 입장문을 통해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대통령과 당선인 간 실무 역할을 맡은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통화 내용까지 언급하며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장 실장은 "이철희 정무수석이 '이창용 씨 어때요' 하니까 (제가) '좋은 분이죠'라고 한 게 끝"이라며 "협의한 것도, 추천한 것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발표 직전까지 이 후보자에 대해 "추천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인사"라는 의사를 청와대 측에 전했다는 것이 장 실장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장 실장은 "(청와대의 한은 총재 임명은) 감사원 감사위원 임명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는 총 7명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두 자리가 공석이다. 청와대는 공석인 감사위원 두 명 자리를 각각 한 명씩 추천해 서로 협의하자고 제안했으나, 윤 당선인 측에서 청와대 추천 인사에 대한 '비토권'을 보장해달라고 해 최종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한국은행 총재뿐 아니라 감사원 감사위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까지 '패키지' 인사를 요구한 것이라고 전했다.
23일 청와대가 밝힌 '패키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1인과 감사원 감사위원 2인 등 3인에 대한 인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 문제가 가장 쟁점으로 꼽힌다. 양측은 현재 임기가 남아있는 감사위원 4명 가운데 2명(김인회·임찬우)이 친여 성향이라는 점을 감안해 2명 모두 당선인 측 입장을 반영하는 방안, 2명의 인사를 1명씩 나눠서 추천하고 이를 수용하는 방안까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과정에서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가 추천하는 감사위원 1명에 대한 자신들의 거부권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해 협상이 최종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선 감사위원 2명에 대한 인사권 모두를 윤 당선인이 행사하겠다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고 한다.
현재 양측이 풀어야 할 과제는 한은 총재를 제외하더라도 감사위원 2명,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1명에 대한 인사 문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 등 첩첩산중이다.
물론 다양한 난제들에 대해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일단 회동부터 성사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역대로 (당선자가) 대통령을 만날 때 이렇게 조건을 걸고 만난 적이 없지 않느냐"면서 "두 분이 빨리 만나는 게 좋은 것이고, 나머지 세 자리는 빨리 협의를 하자, 이렇게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동을 위한 조율 과정에서 감정의 앙금까지 쌓인 데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예비비 활용 등 난제가 겹쳐 있어 '조건 없는 회동'이 쉽게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역대 대통령인과 당선인의 회동은 최장 9일 만에 성사됐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9일 만인 12월28일 이명박 당시 당선인과 만찬을 겸해 만났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 9일 만인 12월28일 박근혜 당시 당선인과 청와대에서 회동한 바 있다.
그 외에는 짧으면 이틀 길면 나흘 정도가 걸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당시 당선인과 대선 4일 만인 2002년 12월23일 만났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당선인과 대선 2일 만인 1997년 12월20일 만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당시 당선인과 대선 3일 만인 1992년 12월21일 회동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