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한지혜 기자] 기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보다 전파력이 센 것으로 알려진 '스텔스 오미크론(BA.2)'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유행이 커지고 길어질 전망이다. 이대로 가면 의료 대응 여력이 한계에 달해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쏟아질 가능성이 커 중환자 병상 우선배정 기준을 사전에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초 발견된 스텔스 오미크론(BA.2)은 오미크론 변이 중 하나로, 기존 오미크론보다 전염력이 30%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증도나 입원율에는 큰 차이가 없다. BA.2는 해외에서 델타 변이로 인식되거나 유전자증폭(PCR)검사로 확인되지 않는 사례가 있어 '스텔스 오미크론'으로 불리지만 국내 PCR 검사에서는 오미크론 변이와 똑같이 확인할 수 있어 BA.2로 표현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국내 BA.2 검출률이 지난주 41.4%까지 급증한 만큼 이달 중 50%를 넘겨 우세종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BA.2 점유율은 3월 둘째 주 26.3%에서 셋째 주 41.4%로 15%포인트 이상 증가할 만큼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서다. 특히 기존보다 전파력이 더 센 BA.2의 비중이 커지면 유행의 추이에도 영향을 미쳐 정점 구간이 늦춰지고 유행은 커지고 길어질 수 있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지속적으로 방역을 완화해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행의 규모가 커지고 길어지면 의료대응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의료공백이 커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확진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사망자가 더 많이 나오게 돼 우려된다"면서 "일정 기간 많은 사람이 감염되면 전체적인 코로나19 유행 기간은 짧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의료체계의 한계를 막기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보통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는 확진자 증가 이후 2~3주 정도 시차를 두고 폭증하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사망자 수가 600명대, 900명대도 나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날이 갈수록 의료체계에 가해지는 부하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한정된 중환자 병상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료자원은 한정적이어서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등에 행정명령을 내려 병상을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는 데다 중환자 병실은 전문 인력과 장비, 시설이 필요해 단기간에 마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코로나 중환자 병상을 늘리게 되면 비코로나 환자 병상은 줄어 비코로나 중환자들이 진료에 차질을 겪을 수 있다.
엄 교수는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 같은 고도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중환자 병상을 어떤 환자한테 배정할 것인지 기준을 미리 결정해둬야 한다"면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현장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살릴 수 있는 환자를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중환자 병상 우선배정 기준을 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조치로 델타 변이가 급속히 확산해 위중증 환자가 폭증했을 때에도 나왔다. 하지만 당시 뒤늦게 시행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보면서 확산세가 꺾이자 논의가 유야무야됐다.
엄 교수는 "지난해 12월엔 (효율적인 중환자 병상 운영 방안을) 시행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유행 규모가 크고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력도 더 커서 좀 다를 수 있다"면서 "대한중환자의학회가 마련해 놓은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정부와 관련 학회가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지난 2020년 8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감염병 유행 시 거점병원 중환자실 프로토콜'을 통해 입원대상자가 동시에 발생할 때 우선순위가 가장 늦은 사람으로 ▲뇌·심장·폐 등 말기 장기부전 환자 ▲예측 사망 가능성이 90%가 넘는 중증 외상·화상 환자 ▲과거 또는 현재 뇌출혈 혹은 뇌경색으로 인한 심한 뇌기능 장애가 있는 경우 ▲예상 생존기간이 6개월 미만인 말기 암 환자 ▲예측 생존확률이 20% 미만인 환자 등의 기준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