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8일 83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파란만장한 삶만큼이나 명암이 엇갈린 그가 남긴 유산은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산증인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남북화합과 경제난극복 등을 위해 노력한 점은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제왕적 정당운영과 지역할거주의 등 대권을 위해 김영삼, 김종필 등과 함께 ‘3김 정치’로 대변되는 구태정치로 인한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60년대 정계에 입문한 후 유신체제와 신군부 등 군부독재와 맞서 우리나라 민주화의 대부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험난한 정치역정속에 1998년 대권을 잡은 김 전 대통령은 IMF 환란을 극복했고 ‘햇빛정책’을 통해 6.15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전기를 이뤄내면서 분단 55년의 벽을 허물고 남북화해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민주화투쟁과 남북화해를 위해 힘쓴 공로로 대한민국 사상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돼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는 한편,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게 했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듯이 김 전 대통령은 영남출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충청도 출신인 김종필 전 총재 등과 함께 ‘3김 정치’로 일컬어지는 지역맹주, 제왕적 정당운영 등의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동교계동’이라고 불리는 계보·가신 정치는 공천 등의 과정에서 안방·밀실·금권정치가 횡행하는 등 공조직이나 시스템에 의한 정치가 아예 작동하지 못하게 했고, 대권에 도전하는 김 전 대통령은 암묵적으로 이를 용인하는 측면도 있었다. 또 제왕적 1인 결정 정당체제는 영남에 뒤지지 않는 호남의 승리를 위해 전폭적인 지지요구속에 당내 민주화는 매번 희생당하게 했다.
“전라도에서는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횡행하고 그것이 실제로 가능했던 것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이같은 명암이 과연 어떤 역사적 평가을 받을 지 두고두고 국민들에게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역사를 중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