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한지혜 기자] 미국 정부가 북한의 화성-17형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공개한 직후 부품 조달에 협조한 러시아 국적자 2명과 러시아 회사 3곳에 제재를 가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북한판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미사일(NK-23), 극초음속 미사일에 이어 ICBM 기술까지 북한에 넘겼을 것이라는 의심이 증폭되고 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은 지난 11일 러시아인 2명과 러시아 회사 3곳을 제재했다고 발표했다. 제재 대상은 러시아 회사 아폴론과 이 회사 소속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 가예보, 그리고 또 다른 러시아 회사 질-M과 RK 브리즈, 이 회사 소유주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차소브니코프다.
미국 정부는 아폴론과 가예보가 2018년 미국과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 국적자 박광훈의 부품 조달 행위를 도왔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북한 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다는 의미다. 한미 군 당국은 미국 정부의 이번 단독 제재가 발표되기 직전에 북한이 지난달 말과 이달 초에 화성-17형 관련 시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 기술을 전수한 정황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월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뒤에도 러시아 인사들에 독자 제재를 가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은 1월12일 러시아를 근거지로 두고 있는 최명현과 오영호, 중국에서 활동 중인 심광석, 김성훈, 강철학, 변광철 등 북한 국적자 6명과 러시아 국적자인 로만 아나톨리비치 알라르, 러시아 기업 파르세크(Parsek LLC)를 특별지정제재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들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 중국 선양·다롄 등에서 활동하며 북한의 미사일 관련 물품을 조달한 개인과 기관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고 의심해왔다.
미사일 전문가인 이안 윌리엄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사일 방어 프로젝트 부국장은 지난 1월13일 미국의 소리 방송(VOA)에 "북한의 미사일 역량 진전과 관련해 외부의 도움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중국보다도 러시아를 먼저 의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부국장은 KN-23과 철도 발사 탄도미사일 등을 예로 든 뒤 "북한의 많은 미사일이 러시아 미사일과 매우 비슷한 부분이 있다"며 "북한이 현재 선보이고 있는 미사일 역량들은 구소련에서 1980년대에 개발됐던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6일 '북한의 연말연시 군사 관련 행보와 남겨진 과제' 보고서에서 "북한은 제재를 받는 중에도,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 중에도 무기체계와 관련된 기술과 장비를 어디로부터인가 공급받고 있었다"며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는 단연 중국과 러시아"라고 짚었다.
이처럼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신무기 기술을 들여왔을 것이라는 의심이 커지고 있지만 북한이 당장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의 무기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신승기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9일 '북한의 신형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평가 및 함의' 보고서에서 "북한의 신형 유도무기가 대부분 러시아·중국의 유도무기 형상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소위 개발창조형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여전히 견본모방형 연구개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진정한 개발창조형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견본모방형보다 더 많은 개발 위험·비용 감수가 불가피하지만 현재 북한의 어려운 경제 사정 등을 고려 시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향후에도 선진국이 개발한 첨단 유도무기를 모방하는 견본모방형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