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 투표·출마, 16세 정당가입 가능
"학교에서 선거교육 받은 적 없어"
"후보 어떻게 골라요…온라인에 휘둘려"
교육계 "실질적·중립적 정치교육 필요"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만 18세 학생들이 9일 대선 본투표에 처음 참여하는 가운데 확대된 청소년들의 참정권에 비해 이들에 대한 정치·선거교육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대선 첫 투표에 임하는 만 18세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선거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로 인해 정치·선거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없이 투표에 참여하거나 출처 불분명한 온라인 게시물에 쉽게 휩쓸리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기준으로 이번 20대 대선에서 선거권을 갖는 학생 유권자는 3월10일 이전에 태어난 2004년생 총 11만1932명이다.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선거인수 4416만8510명 중 0.25%에 불과하지만, 어느 한 쪽의 우세를 섣불리 점칠 수 없는 대선 판세를 고려하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선거권 연령은 2019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만 19세에서 18세로 조정됐다. 정치관계법 개정으로 올해 1월부터 만 18세 학생들은 선거에 출마할 수 있으며 정당가입 연령도 만 16세로 낮아졌다.
이처럼 청소년들의 참정권은 확대됐지만 관련 학교 교육은 부실한 상황이다. 선거권이 있는 만 18세 청소년들은 공직선거법 개정 후 3년간 학교에서 정치·선거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는 목소리가 상당수다.
전북에 거주하는 권모(18)양은 "(선거 교육을)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학교에선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선생님들이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경기도 소재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모(18)군도 "선거 관련 교육 과정이 전무했다"며 "'정치와 법' 같은 교과 수업을 듣지 않으면 사전투표가 뭔지도 잘 모른다"고 밝혔다.
정치나 선거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권이 주어진 학생들은 온라인에 흩어진 후보에 대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정보 탐색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권양은 "투표권이 있어도 선택할 후보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는지, 뭘 봐야 될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다"며 "후보자 공약이나 당사자에 대해서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교육적으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후보 선정을 어렵게 느껴 귀찮아 선거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김군은 "정치에 관심이 있지 않으면 열에 여덟은 자극적인 보도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며 "정당이나 선거에 대해 잘 모르고 투표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3년간 진행한 선거 교육 정책을 살펴본 결과, 교육 당국이 주도적으로 집행한 선거교육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육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작한 선거법 안내 영상 등을 시·도교육청에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교육청은 대선 관련 교사용 지도자료를 직접 만들어 각 학교에 내려보냈지만 단발성에 그쳤다.
교육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선거에 대한 교육은 하고 있지 않다"며 "좀 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실제 정치에 투입될 수 있는 학생들이 참여형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토의·토론 교육 등에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계 시민단체들과 학계는 학생들의 참정권이 확대된 만큼 그에 걸맞은 실질적인 정치·선거교육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공동대표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어떻게 가려내는지, 투표할 때 어떤 점을 유념해서 봐야 하는지 등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이라며 "실습 형태의 정치 중립적인 선거교육은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한나 총신대 교육학과 교수는 "만 18세 학생들의 첫 대선 투표가 진행된 만큼 이젠 학생 유권자에 대한 정치·선거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편향된 이념, 자극적 정치색이 아닌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 판단, 자주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모의투표제' 등 간접적으로 선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방식이 도입되길 바란다는 희망도 내비치고 있다.
김군은 "이론수업도 필요하지만 모의투표처럼 실질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방식이 학생들에게 효과가 더 높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권양도 "학생회장 선거로도 경험할 수 있지만 실제 지방선거나 대선과는 차이가 있다"며 "학교에서 당도 만들어보고, 선관위도 구성해보고, 법도 제정하는 등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정치·선거수업이 마련돼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모의투표제는 한 차례 선관위에 의해 제재를 당한 적이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 지방선거에 앞서 관내 초·중·고 40개교를 대상으로 모의선거 교육을 실시하려 했으나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선거법 위반 소지를 문제 삼은 선관위에 의해 좌절됐다.
교육청 관계자는 "국가공무원법상 교사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해 선거교육을 따로 진행하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 "이런 부분이 먼저 개선돼야 학교에서 정치·선거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학생들을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교육은 이미 교육과정 속에 있지만 더 체계적이고 다양하게 실시돼야 한다"며 "그래야 고교 선택과목에 정치 관계나 법에 대한 과목을 추가하는 등 고교학점제와도 조화를 이루며 지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