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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덫’에 걸린 여의도…그 끝은?

김부삼 기자  2009.03.28 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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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치권 로비의혹을 조사중인 검찰이 지난주부터 현역 국회의원들을 줄소환하면서 여야 할것 없이 패닉상태에 빠져든 모습이다. 특히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예상밖의 인사들이 소환되는가 하면 검찰이 4월 임시국회 회기 시작전 1차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플랜에 따라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그 파장이 어디에 미칠지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이다.
검찰은 이광재 민주당 의원을 소환해 강도높은 조사를 벌인 뒤 구속했으며 이어 28일에는 서갑원 의원이 소환됐다. 또 민주당뿐 아니라 전날에는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검찰에 소환되면서 검찰 수사가 문자 그대로 전방위로 확대되는 양상인 것.
더구나 박 의원과 서 의원 외에 검찰에 추가로 소환될 예정인 정치인들은 지금껏 거론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인물이라는 얘기까지 나돌면서 검찰의 칼끝이 어디에 가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형국이다.
당초 검찰은 박 회장이 지역기반을 두고 활동해온 부산과 경남 출신 의원들만 겨냥했던 것으로 보였지만 예상 밖으로 신의정연구센터 소속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그룹으로 수사가 옮겨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전혀 예상밖의 인물들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에 24명 리스트가 존재한다거나 영남권 의원 대규모 연루설, 현역 의원 70~80명 대상설, 구정권에 대한 사정바람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에 여야 의원들은 “어느 누구도 안전하다고 말을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이번 검찰 수사를 대한민국 부패척결의 기회로 보고 여야를 막론한 성역없는 수사를 강조했으나 추부길 전 대통령 홍보기획관에 이어 박 진 의원이 소환되면서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 27일 “수사의 끝을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박 의원은 ‘박연차 리스트’에 거론되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로 검찰 수사의 폭발성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4월 임시국회 개회 이전까지 현역 국회의원 2,3명을 조사하겠다”면서 “필요하다면 4월 국회 회기 중에라도 현역 의원들을 소환해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박 의원을 포함해 모두 7명에 대해 체포나 소환을 통해 직접 조사를 벌였다. 이 가운데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이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지금까지만으로도 웬만한 ‘게이트급’ 사건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유력 인사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뤄진 셈이다.
◆부산경남 이어 수도권까지 불똥
박진 의원의 소환은 수도권의 전현직 의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불똥이 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검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의 정치권 로비자금 내용이 담긴 ‘정대근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작 당 지도부는 검찰 수사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한 고위 당직자는 최근 검찰에 “여당은 좀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 힌트라도 달라”고 섭섭함을 표시했지만 검찰 쪽에선 “아무것도 얘기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27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홍준표 원내대표만이 박 의원 문제에 대해 “일방적 진술만으로 소환을 당해 그것이 사실인양 매도되는 사례도 있다”며 조심스레 언급했을 뿐이다.
민주당도 이광재 의원이 구속되고 서 의원이 소환되는 등 검찰수사에 속도가 붙는 양상을 보이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단 검찰은 한나라당 의원을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민주당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에 “여당 인사는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살살 수사한 뒤 전격적으로 야당 인사를 불러 구속수사 방침을 천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는 입장이다. 김유정 대변인은 “우리당은 서갑원 의원을 믿는다”며 “검찰은 한나라당 권경석 허태열 의원과 권철현 주일대사 등 정부 여당 인사도 지체없이 소환해 ‘박연차 로비설’의 실체를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특검도입 및 국정조사 요구로 주위를 환기시키려는 시도도 병행하고 있다. 김유정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성역없는 수사’가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특검과 국조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여권 실세와 검찰 등에 대한 전방위 로비설이 있지만 설로만 그치고 있고 검찰의 화살은 전 정부와 야당 인사에만 집중되고 있다”며 “수사가 형평성을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을 밝힐 것”이라며 “‘박연차 리스트’의 진실을 밝히는데 한나라당도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특별검사제 도입 및 국정조사 추진에 대해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조윤선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을 통해 “특별검사제와 국정조사는 검찰수사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면서 “지금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검찰의 조사 경과를 보면 성역없이 여야 의원들을 수사하는 것이 보인다”면서 “민주당이 임시국회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특별검사제를 운운하는 것은 임시국회를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핑계”라고 일축했다.
김정권 원내대변인도 “한나라당은 정치권의 스캔들에 대해 여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며“검찰이 수사중이기 때문에 수사에 영향을 줄만한 얘기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수사의 끝은 노 전 대통령?
검찰수사의 양상이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로 확대되면서 ‘박연차 리스트’의 종착점은 노 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검찰은 24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한병도 전 의원도 검찰의 강도 높은 참고조사를 받았다. 또 김혁규 전 경남지사도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알려졌고 서갑원 의원도 소환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17대 국회 친노 직계 모임이었던 신의정연구센터(의정연) 멤버들로 참여정부 1기 청와대 구성원들이다. 박연차 회장과 친노 정치인들의 ‘연결고리’ 의혹을 받고 있는 김 전 지사는 의정연 상임고문을 맡았었다. 이광재 의원은 ‘우(右)광재 좌(左)희정’로 불리며 참여정부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해왔고 구속영장이 청구된 장인태 정 행자부 차관과 박정규 전 민정수석도 참여정부 고위인사들이다.
박연차 커넥션의 중심에도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있고 어리숙한 아저씨라는 평소 평가와는 달리 각종 선거와 기관장 인사 개입 의혹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직접 연루 의혹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년 기한으로 15억원을 빌린다는 내용의 차용증을 작성했으나 이보다 많은 50억원이 건네졌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5일 노 전 대통령의 50억 수수설 의혹에 대해 “현재 언론보도를 보면 노 전 대통령에게 수십억원이라는 거액이 제공됐다는 의혹이 보도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노 전 대통령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측은 이같은 예측을 극구 반박하면서 연루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수사가 이제 막 초기단계인 만큼 그 끝이 어디가 될지는 검찰만이 알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