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한국의 주력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성장 둔화 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부진, 갈수록 치열해지는 환율 전쟁 등의 여파로 주력산업들이 국내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의 높은 수출 의존도를 고려할 때 주력산업의 부진은 전반적인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사뉴스>는 ‘흔들리는 주력산업’을 주제로 국내자동차 업계의 현황 및 경쟁력 제고 방안을 점검한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내수시장은 물론 해외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내수 점유율 69.3%를 기록했다. 지난 1998년 12월 기아차를 인수·합병한 이후 국내 시장 점유율이 7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수입차는 국내 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 20만대를 바라볼 정도로 질주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전망도 밝지 않다. 한양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1~7월 현대자동차의 해외판매(수출+해외공장)는 236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했다. 기아차는 외국시장에서 1.5% 늘어난 147만대를 팔았다.
송선재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 경기·환율 불안 등으로 신흥국의 자동차 수요가 위축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도 자연스레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성장 둔화·환율경쟁 겹쳐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판매를 다시 늘리려면 중국을 포함한 신흥시장 공략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현대·기아차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올해 계속 9~10%대를 유지했으나 6월에는 7.3%로 뚝 떨어졌다.
현대차는 올해 1~7월 중국에서 56만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보다 10.9% 줄어들었다. 기아차도 33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감소했다. 지난달 현대차와 기아차의 중국 판매량은 지난해 7월보다 각각 32%, 33% 줄어들었다.
중국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부진은 로컬브랜드의 강화와 SUV 라인업 미비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길리기차와 장성기차의 상반기 판매량은 전년보다 67%, 17% 늘어났다. 상반기 중국업체의 SUV 판매는 전년보다 96% 증가했다. 이에따라 중국업체의 점유율도 지난해보다 5%포인트 성장한 35%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25년 만에 최저 경쟁성장률(6.8%)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값비싼 글로벌 자동차보다 가격 부담이 덜한 중국 현지 업체들의 제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현대·기아차는 중국인의 선호 차종인 SUV 라인업도 현저히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도 일본에 밀리며 고전하고 있다. 일본업체들은 지난 2013년 이래 2년 동안 엔저 현상에 힘입어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미국에서 '제값 받기' 정책을 고수하던 현대·기아차가 뒤늦게 판매 인센티브 강화 정책을 펼쳤지만, 일본의 가격경쟁력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미국시장에서 소형과 중형 세단 라인업 등에서 도요타 등 일본 업체들과 경쟁 중"이라면서 "가격 경쟁력과 신모델 라인업 모두 일본 브랜드보다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원화 약세 현상이 나타나면서 현대·기아차도 환차익을 기대하고 있다. 24일 오전 9시께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00원을 기록했다. 장중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에 진입한 것은 2011년 10월4일 이후 처음이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경영계획을 세울 때 원·달러 평균 환율을 1050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를 웃돌면서 여유가 생겼다. 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상승할 때마다 현대·기아차 매출은 약 3200억원 증가한다.
◆“프리미엄 SUV 브랜드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현대 기아차가 환율 수혜로 반짝 '재미'를 볼 수 있지만, 판매부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차 라인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최근 글로벌 인기를 끌고 있는 SUV 라인업 확대가 필수 과제로 꼽힌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은 카셰어링 등의 추진으로 앞으로 자동차 시장이 정체할 것"이라며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의 수요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흥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그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대형 SUV라인업이 없다"면서 "대형 SUV 시장이 크지 않지만,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기에는 유용하다"고 말했다. 벤츠 GLK·GLC클래스, 아우디 Q5·Q7,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 등 프리미엄 이미지가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하나의 브랜드를 내세워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매우 미흡하다"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세우고, 라인업에 맞는 신차를 출시하는 게 더욱 이상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년에 출시되는 제네시스 SUV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기대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중국 현지에 맞는 SUV 라인업과 현지 로컬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가격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내수시장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현대·기아차도 A/S 구조를 개선하고 고객 소통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후화된 모델 체인지도 시급하다. 현대·기아차는 이달 중 글로벌 시장에서 재고를 소진한 후 다음 달부터 신차 출시와 더불어 공격적인 마케팅일 시행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9월 풀체인지된 신형 아반떼를 출시한다. 아반떼는 지난해 한국 단일 차종 중 최초로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전 세계 판매 모델 중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아차도 K5와 스포티지의 글로벌 판매를 앞두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올해 글로벌 자동차시장 성장률은 1.2%로 지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국 통화 약세에 힘입은 일본 및 유럽업체들의 공세로 경쟁이 심화돼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차 출시와 함께 해외 공장 가동률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전사적인 비용 절감 노력으로 수익성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