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광복 70주년 경축사를 통해 북한과 일본에게 당면사안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앞으로 발전적 관계를 쌓아가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먼저 대북(對北) 메시지는 최근 북한의 지뢰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의 문은 열어놓은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대북 정책의 양대축이 '도발에 대한 응징'과 '평화적 협력을 위한 설득 노력'에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후자쪽에 좀 더 많은 메시지를 할애함에 따라 대화와 협력에 무게중심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0주년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진정한 광복은 민족의 통일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남과 북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가야 한다”는 말로 대북 메시지를 시작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숙청 등 공포정치와 핵개발, 대화 거부 등을 비판하면서 북한이 변화와 협력이라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최근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에 대해 “정전협정과 남북간 불가침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광복 70주년을 기리는 겨레의 염원을 짓밟았다”며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북한은 도발과 위협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한다. 도발과 위협은 고립과 파멸을 자초할 뿐”이라며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과 DMZ 지뢰도발 등 일련의 북측 도발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
당초 청와대는 광복 7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해 대북 메시지를 대화와 협력으로 채우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지뢰도발을 부인하면서 군사행동 위협까지 서슴치 않는 상황에서 '도발 응징'에도 일정 부분 무게를 싣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지뢰도발 다음날 통일부가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고 박 대통령이 경원선 복구행사 등에 참석하면서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화·협력에 무게…이산가족·보건의료 등 협력 제안
그러나 박 대통령은 평화통일 메시지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이번 경축사의 중심축이 응징보다는 북한과의 대화·협력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만약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민생향상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분단 역사상 최초로 대화로 평화통일을 지향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언급했다.
남북 간 대립과 갈등의 골이 지금보다 훨씬 깊었던 당시에도 평화통일의 의지로 대화통로를 마련했던 것처럼 또 한번 남북이 신뢰구축의 길로 나아가자는 게 박 대통령의 요지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연내 이산가족 명단교환 ▲자연재해·안전문제 공동대응 ▲문화·체육교류 등의 협력을 제안했다. 이는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제안한 바 있는 '작은 협력'을 통한 남북 간 신뢰구축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남북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중대제안을 내놓더라도 실효성이 없는 만큼 큰 진전으로 보이지 않는 사업이라 하더라도 낮은 단계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은 조치들을 통해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어보자는 의도로 이해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이 이념문제가 아닌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호소하고 우리측이 먼저 6만여명의 남측 이산가족 명단을 북측에 일괄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측이 먼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화의 손을 내밀테니 북한도 이에 화답해 달라고 촉구한 것이다.
또“한반도의 자연재해와 안전문제도 함께 대응해 나가자”며 남북간 보건의료 및 안전협력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 국면에서도 중장기 질병 관리 등의 남북 보건의료 협력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를 대북 제안으로 구체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대일 메시지도 비판보다 관계개선에 방점
대북 메시지처럼 박 대통령의 대일(對日) 메시지도 우경화 행보에 대해 지적을하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위한 관계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전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 '침략', '사죄', '반성' 등 핵심키워드를 모두 언급하긴 했지만 직접 사과는 회피해 주변국에 실망감만 안겨준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도 이를 지적하듯이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일본 내각이 밝혀온 역사 인식은 한·일 관계를 지탱해 온 근간이었다”며“그러한 점에서 어제 있었던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 위안부를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 등과 비교해 아베 담화에는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들어있지 않다는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박 대통령은 더 이상의 비판은 자제한 채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아베 담화를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공언을 일관되고 성의 있는 행동으로 뒷받침해 이웃나라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미흡한 점이 있지만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겠다고 한 부분은 평가할 만하며 이 같은 약속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제대로 이행될지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동시에 과거사와는 별개로 경제·안보·사회문화 분야의 협력은 확대해 나간다는 '투트랙' 기조에 따라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도 경주해 가겠다는 뜻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과거형 사죄'를 두고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유감 표명이 없었다는 점을 두고 비판도 제기된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아베 담화의 미흡함을 지적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이 그동안 취해왔던 대일관계 입장이나 국민의 정서에 비춰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며 “혹여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공언한 아베 총리가 이날 측근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료를 납부하고 현직 일본 각료들이 줄지어 신사 참배에 나섬에 따라 박 대통령의 대일 메시지 수위를 둘러싼 비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