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철호 기자] 지난 31일 14년간의 국가대표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차두리(35·서울)는 선수 시절 내내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그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늘 본의 아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차범근(62) 전 감독은 한국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슈퍼스타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선수들이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그의 아성을 뛰어 넘은 선수는 없다.
'차붐'의 우월한 신체조건을 고스란히 물러 받은 차두리의 목표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차두리에게 차 전 감독은 다른 세대에 존재하는 라이벌인 셈이었다.
차두리는 "항상 아버지의 명성에 도전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보다 잘하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라이벌은 넘기 힘든 벽으로 바뀌었다.
차두리는 월드컵을 두 차례나 경험했고 대표팀에서도 70경기 이상 뛴 선수다. 무척 성공적인 축구 인생이었다.
다만 차 전 감독의 선수 시절이 이와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화려했을 뿐이었다.
차두리는 "어느 순간부터 현실의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잘하는 아버지를 둬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처에 못 가니 여러 기분이 들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두 사람은 뉴질랜드전 전반전이 끝난 뒤 그라운드에 나란히 섰다. 차두리의 은퇴식이 진행되던 중 차 전 감독이 꽃다발을 들고 깜짝 등장했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르던 차두리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공식석상에서는 마지막이 될 국보급 부자의 포옹이었다.
차두리는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아버지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면서 "아버지는 모든 것을 갖추신 분이다. 축구적으로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선수였다. 집에 돌아가면 그런 아버지와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