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는 최근 급속한 변화가 있었다. 전통적으로는 부모에 대한 공경(부양)과 자녀에 대한 희생이 근간을 이루었다면 요즘은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되 협조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개념이 더 커졌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각각 의미의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30년 가까이 병원에서 환자들과 함께 생활해 오면서도 이런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가족 내에서 환자가 생기면 개인의 생활과 부양이라는 역할 사이에서 가족공동체가 겪는 위기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예전처럼 병실은 가족이나 친지들의 문병으로 북적거리거나 밤새워 간병하던 가족의 모습은 점차 찾아보기 힘들다. 밤새 환자를 돌본다 하더라도 기족이 아닌 요양보호사나 간병인들이 대부분이다. 환자 대 간병인의 비율이 거의 1:1 에 가까울 정도여서 환자 간병은 더 이상 환자가족들의 몫이 아니다. 대다수가 맞벌이고 사회 환경이 점점 더 각박해지기 때문에 생업을 중단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와 간병인의 일반적인 관계를 살펴보면, 간호사는 주치의 오더를 확인하고, 처치, 검사 및 결과 확인, 수술 전후 간호 등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환자, 보호자 및 간병인과의 관계형성도 중요하다. 경력이 많은 간호사들이라면 이 부분에서도 베테랑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간호사들은 대부분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간병인의 역할을 기본적인 환자의 수발과 빠르고 안전한 회복을 위해 간호사가 전달하는 각종 유의사항, 필요한 지식을 숙지하고 환자를 간병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종종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예를 들면 간호사가 “수술 후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체온유지는 이불로 보온을 해주세요. 수술 후에는 감각저하가 있기 때문에 환자분이 추워하신다고 해서 핫팩을 대주시면 오히려 화상을 입으실 수도 있으니 절대 하시면 안돼요”
“금식이 필요한 분은 금식표시를 붙여 놨으니 지켜주시고 물론 물도 드시면 안 됩니다”
이런 주의에도 불구하고 환자분의 요구로 괜찮겠거니 하며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담당 간호사는 간단하면서도 꼭 필요한 간병 행위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것이지만 간병인은 전문인이 아니다보니 이런 문제를 간과할 수 있고, 그 책임은 모두 담당간호사에게 있다. 이러다 보니 늘 긴장감속에서 간호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2013년 3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에 대한 공청회가 있었다.
“포괄간호서비스” 즉 보호자나 간병인이 필요 없는 병원에 대한 국가사업이다.
공청회를 듣고 나서 좋은 취지의 사업이지만 만일 현실화 된다면 생길 여러 문제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서 마음이 복잡했다. 공청회 내용을 병원장께 보고 드렸고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정말 필요한 제도이며 윌스기념병원이 이 제도를 정착화 하는데 밑거름이 되어 보자는 병원장의 말씀에 힘입어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직원들에게 알렸을 때, 그동안 많은 부분에서 믿고 따라와 주었던 수간호사들까지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왜 안 그렇겠나 싶으면서도 큰 벽에 부딪힌 것 같아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취지를 잘 살렸을 때 얻어지는 성취감을 더 특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수간호사들을 설득한 결과 2013년 7월에 순조롭게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사업을 시작하면 이직을 하겠다고 공표를 하기도 하고 시범사업의 성공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던 간호사들이 걱정하던 것은 보호자나 간병인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 안전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고, 또 현재 업무도 과중한데 간병업무까지 늘어날 것이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필자를 포함해 모든 간사들이 이탈 없이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던 부분에 대한 다양한 해법들을 찾아냈고 예상했던 어려움 이면에는 예상하지 못한 득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병실 바로 앞에 설치된 보조 스테이션에 담당 간호사가 상주하고 안전사고예방을 위해 병상에 너스콜을 설치해 수시로 그리고 빠르게 환자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환자들의 거동을 관찰하기 위해 거울 및 반사경을 곳곳에 설치해 사각지대를 없앴다. 병실 내 낙상예방용 센서를 개발하고 각종 의료장비나 시설들을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간호사들은 포괄간호서비스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병동에 상주하는 인원이 환자뿐이니 분위기가 훨씬 차분해졌고 간호사가 간병을 하다보니 환자 불만이 크게 줄었다. 또한 간병인이나 보호자의 컴플레인이 없어져 간호사들은 오히려 예전의 병동시스템으로 되돌아 갈까봐 우려하는 재미있는 상황이 되었다.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이 간호사 뿐만 아니라 환자, 보호자 모두에게 어려운 점을 뛰어넘는 장점이 많은 사업이기 때문이다.
전문인인 간호사들이 환자의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고 처리하면서 환자와의 관계에서 유대관계가 형성되고 소통이 원활해지면서 이로 인해 신뢰관계가 높아진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간병을 해결 할 수 있고 간병으로 인한 시간적, 심리적 부담까지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간호사가 간병을 하니 더욱 안심하고 환자를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 가족들은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향후 더욱 심화되는 가족해체 현상과 초 고령화로 인해 우리의 자녀 세대가 짊어져야하는 부양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미리 대비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국가에서 시행하는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은 직접 겪어보니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시행착오를 줄여가며 착실하게 시행하다보면 제도화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만들어간 간호인으로서 좀 더 많은 환자들에게 확대해 혜택이 돌아갔으면 한다. 이로 인해 국민들에게는 높은 삶의 질과 희망을, 국가는 의료선진국으로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