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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시] 유럽의 유리 문화를 주도한 '보헤미아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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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역사 문화 소개하는 340여 점의 전시품 통해 유럽의 미적 철학적 세계관 탐색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체코는 아름다운 수도 프라하를 통해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체코 보헤미아 지역이 유럽의 유리 문화를 주도했던 유리 생산지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한국과 체코 간 외교관계 수립 25주년을 맞이해 체코국립박물관ㆍ프라하장식미술관은 보헤미아의 유리 예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공동 개최했다.

보석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크리스털 유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4월2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체코가 자랑하는 보헤미아 유리를 중심으로 체코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340여 점의 전시품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보헤미아에서 생산된 다양한 유리 공예품들이 전시돼, 보헤미아 유리가 끊임없는 노력과 기술 개발로 유럽 최고에 이르는 과정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보석처럼 투명하고 반짝이는 크리스털 유리는 보헤미아 유리를 대표하는 품목이다. 당시에 인기 있던 주제인 인물 초상, 사냥 장면 등을 섬세하고 정밀하게 새긴 잔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보헤미아 유리의 장식 기법은 붉은색의 루비 유리, 금사를 넣은 유리, 금박 그림을 넣은 이중벽 유리 등 다양하다.
19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장식 기법은 더욱 다변화되며, 특히 유리에 불투명한 색과 문양을 넣어 마치 준보석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이 유행한다. 또한 유리의 투명하고 반짝이는 성질을 이용해 값비싼 보석의 대체품으로 사용한 유리 장신구 산업도 발달했다.

 중세 시대 경제적 문화적 번영화 함께 급속 증가
체코 영토에서는 선사 시대의 유리 팔찌와 구슬 등이 발견돼 오래 전부터 유리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체코에서 유리 제작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중세 시대였다. 경제적, 문화적 번영과 함께 왕과 귀족, 교회와 부유한 시민의 수요에 따라 유리의 제작이 급속히 증가했고, 고품질의 유리가 생산됐다. 성당 및 일반 건물의 건축이 증가하면서 색유리창인 스테인드글라스도 제작됐는데, 색유리 조각을 납선으로 연결하고 슈아르즐로(schwarzlot)라는 기법의 검은색 그림을 그려 장식했다.
보헤미아의 유리 장인들은 새로운 기술과 양식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많은 유리 제품을 제작했다. 이 시기에는 특히 여러 가지 색채의 에나멜 그림으로 장식한 유리의 인기가 높았는데, 축하연을 위한 술잔이 많이 만들어졌다.
황제 루돌프 2세의 치세에 프라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서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가 됐다. 당시에는 고대의 보석 세공기법을 이용해 잔과 접시 등을 세공하는 새로운 방식이 개발됐는데, 이것이 이후 보헤미아 유리공예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유럽 및 세계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 차지
18세기 중반에는 프랑스 궁정 미술의 영향을 받은 로코코 양식이 유행했다. 작고 우아한 그릇에 풍속화, 우화의 내용 등을 장식하거나, 도자기를 모방한 우윳빛 유리에 에나멜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유행했다. 예술적, 기술적 발전과 함께 국제적 유통망을 확보한 보헤미아 유리는 18세기에 당시 세계 최고였던 베네치아 유리를 제치고 유럽 및 세계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19세기의 보헤미아 유리에는 유럽의 다양한 사조가 영향을 미쳤다. 19세기로 접어드는 과도기에는 합리적 질서에 바탕을 둔 고전주의 양식이 영향을 미쳤고, 이후 나폴레옹 1세 시기의 제국 양식은 기하학적 장식과 새로운 형태를 추구했다. 시민계층의 성장에 힘입어 비더마이어라는 실용적인 시민 양식도 발전했다.
보헤미아 유리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판매가 침체됐으나, 다양한 색채와 세공 기술을 발전시켜 세계시장에서의 위치를 회복해 나갔다. 준보석을 모방한 리티알린 유리와 마노 유리가 제작됐고, 착색제와 광택제 등을 이용해 다양한 색과 효과를 내는 기법도 개발됐다.
19세기 후반에는 옛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역사주의 양식이 풍미했다. 네오고딕, 네오르네상스, 네오클래식 풍의 디자인이 유행했고, 전통적인 기법이나 동양적인 주제의 장식을 이용한 제품들도 제작됐다.
보헤미아에서 유리 장신구의 발전은 원래 베네치아에서 유래한 보석 세공 기술과 관련돼 있었다. 값비싼 보석을 대체하기 위한 노력으로 18세기 초반에 보석을 모방한 유리를 세공하기 시작했는데, 야블로네츠나트니소우Jablonec nad Nisou 지역은 그 중심지였다.

지금도 활발히 살아있는 유리 예술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유리를 이용한 현대미술 작품으로 꾸며진다. 보헤미아 유리의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체코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유리 학교에 입학해 교육을 받으며, 예술가들은 유리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유리를 매체로 한 20세기 작품들은 체코의 유리 제작 전통이 지금도 활발히 살아 있음을 보여 준다.
유럽에서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으로, 20세기 전환기에는 다양한 형태에 꽃과 식물, 동양적 취향의 패턴 등을 장식한 유리 화병이 많이 제작됐다. 이 시기 체코의 기업가들은 외부에서의 새로운 영향을 발전시키고 전통적 유리 생산 기술을 결합해 뢰츠, 메이르, 크랄리크, 모제르, 하라흐 등 많은 유리 공장을 설립했다. 유리 예술가들은 이러한 공장에서 디자이너로 직접 일하거나 혹은 협력하는 방식으로 유리 생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에는 기하학적 문양을 선호하는 아르데코 양식이 유행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제품의 용도를 중요시한 기능주의가 등장해 유리 제품의 기능에 중점을 둔 디자인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유리는 창작의 수단으로 변모해, 1920년대 초반 프라하 응용미술학교에는 공식적인 유리 예술 학과가 생겼다. 전문적인 유리 교육은 오늘날까지 체코의 유리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조형성과 철학적 내용을 담은 다양한 작품 등장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체코의 예술가들은 유리를 순수 미술의 매체로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뛰어난 조형성과 철학적 내용을 담은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는 예술품으로서 유리의 발전을 불러왔다. 유리 예술의 영역은 공공미술로도 확장돼 1950년대부터는 여러 공공기관, 문화시설 등에 유리 작품이 설치됐다. 현대 체코의 유리 예술은 여러 국제 전시회 및 박람회에 성공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체코의 기독교 관련 유물이다. 체코인들은 기독교 신앙과 유리 제작 기술을 결합해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체코국립박물관 소장의 스테인드글라스 3점이 선보이는데, 이들은 체코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을 미세한 표정까지 놓치지 않고 입체적인 자수로 표현한 중세의 제의복, 나무로 조각해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는 성모자상,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위엄이 느껴지는 아기 예수상 역시 꼭 봐야 할 이번 전시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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