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세안+3(ASEAN+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8박9일간의 다자 정상외교 일정을 모두 마치고 17일 귀국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역내 주요국 정상들을 모두 만나 대화를 나눔으로써 동북아 외교지형의 급변에 따른 우리나라의 외교적 고립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적으로는 대통령 취임 이후 최대 경제 이벤트로 꼽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한데 이어 한·뉴질랜드 FTA 타결도 이끌어내 우리의 경제영토를 크게 확장시키는 한편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G20 구조개혁 모범으로 선정되는 등 다양한 성과를 올렸다.
◆미·중·일·러 정상과 모두 만나…외교 고립 돌파 ‘성과’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을 앞두고 북한이 억류 미국인 전원을 석방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기습 유화책을 쓰고 일본은 중국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양상을 보였던 게 사실이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인질 석방 카드로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구사하려는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중·일간 정상회담은 대일 외교문제 등에서 한·중간 전략적 협력 기류에 변화 가능성을 야기할 것으로 관측됐다.
여기에 최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러시아를 직접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는 등 북한이 또 다른 6자회담 당사국인 러시아와도 우호관계를 강화하고 있어 우리 정부가 외교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강국의 정상을 모두 만나는 등 활발한 외교행보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1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중 FTA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하는 한편,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 재개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연내에는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의를 개최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전날 APEC 정상회의 제1세션 선도발언에서는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역내 경제연합체인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의 실현을 위한 로드맵 채택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혀 정상선언문 부속서를 통해 'FTAAP의 베이징 로드맵'이 채택되는데 기여했다.
이처럼 한·중간 협력체제를 보다 공고히 하는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중·일 정상회담으로 균열이 생긴 한·중 대일공조를 메운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11일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약 20분간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핵문제 해결과 에볼라 바이러스 등 국제적 이슈에 대한 양국간 공조 체제를 재확인했다.
특히 두 정상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관련 국가들의 단합된 입장이 매우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필요한 노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이는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으로 북·미간 상황변화가 감지되는 가운데서도 한·미간 비핵화 공조는 굳건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억류 미국인 2명이 석방된 과정을 박 대통령에게 설명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지난 3월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3국간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박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에 대한 긴밀한 협력도 다짐했다.
박 대통령은 각 국가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APEC 행사 좌석이 배치되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도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한자리에서 대화를 나눈 것은 지난 3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 8개월 만이어서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등으로 냉각기를 맞고 있는 한·일 관계에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국장급 협의가 잘 진전되도록 독려해 나가기로 한 만큼 지난 4차례의 회의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국장급 협의에도 일정 부분 모멘텀이 될 전망이다.
이밖에도 박 대통령은 11일 APEC 정상회의 제2세션이 끝난 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짧게 환담을 나눴다. 두 정상은 최근 북한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앞으로도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참석 계획도 함께 언급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미·중·일·러 정상을 모두 만난 박 대통령은 13일 아세안+3 정상회의 중 한·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전격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과거사 문제로 냉각됐던 한·중·일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있어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나아가 아베 총리가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갖고 공세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한·일 정상회담 문제를 중국과 함께하는 3국 정상회담으로 풀어내 외교적 고립 우려를 말끔히 씻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APEC 정상회의에서 나온 박 대통령의 FTAAP 지지 발언을 놓고 '중국 경도론' 등 한·미 관계의 균열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중국은 FTAAP 구상에 우리 정부를 참여시키려하는 반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역내 경제통합 논의인 TPP는 중국 주도의 FTAAP와 아·태 지역 최대 경제연합체 자리를 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10일 오후 APEC 갈라만찬에서 TPP의 진행상황을 박 대통령에게 설명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APEC을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 두 정상만 마주앉는 형식으로 짧고 간소하게 이뤄지는 등 이전 회담 형식에 비해 훨씬 '약식'으로 진행된 것을 놓고서는 한·미 관계의 최근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됐다.
◆중국·뉴질랜드와 FTA로 경제지평 확대…아·태 무역자유화 주도
박 대통령은 10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FTA 협상을 타결지은 데 이어 호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뉴질랜드와도 FTA를 타결하게 돼 이번 순방에서만 2개 국가와 FTA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총 52개국과 FTA를 체결하게 됐으며 북미, 유럽, 동북아에 이어 오세아니아까지 FTA 네트워크를 전 대륙으로 확장하게 됐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영토도 73.45%로 확대됐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특히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과 2012년 5월 협상을 개시한 이래 30개월 만에 이뤄낸 한·중 FTA는 대통령 취임 이후 최대의 경제성과라는 평가다. 이번 협상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던 쌀을 비롯 주요 농산물이 개방 대상에서 배제된 것도 상당한 성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과의 FTA 타결로 우리나라는 미국·유럽연합(EU)·중국 등 세계 3대 경제권 모두와 FTA를 체결하게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세계 14대 경제국 중에서는 일본, 러시아, 브라질을 제외한 11개국과 FTA로 연결된다.
나아가 양국 경제전반을 관통하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로 13억 인구의 거대 중국 시장 구석구석까지 열어 젖힐 수 있게 되면서 국내 경제활성화에도 상당한 동력이 실릴 전망이다.
1인당 GDP가 4만달러 이상으로 높은 구매력을 가진 뉴질랜드와의 FTA를 통한 수출 확대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뉴질랜드가 중국·아세안 등 우리나라의 경쟁국과 FTA를 체결한 점을 감안하면 뉴질랜드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이점도 얻는다.
더욱이 FTAAP 논의가 확대되는 가운데 뉴질랜드와 FTA를 타결하면서 미국·아세안·페루·칠레·캐나다·호주·콜롬비아·중국 등에 이어 아·태지역 내 FTA 대상국이 또 하나 늘게 됐다.
이에 따라 아·태지역 국가들이 강조하고 있는 무역자유화 논의에서도 우리나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TPP 협상에서도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게 돼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게 됐다고 청와대는 평가했다.
다만 한·중 FTA에서 역대 최저 수준의 농수산물 개방 폭을 지켜냈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우리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나섰던 자동차 등의 품목이 개방 대상에서 제외된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아울러 쌀 등의 품목이 제외됐다고는 하지만 한·중 FTA로 인한 국내 농가의 피해가 예상되고 축산물과 낙농품 등도 한·뉴질랜드 FTA로 수입 증가가 예상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경제혁신 3개년계획’ G20 구조개혁 모범으로 선정돼
청와대는 우리나라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G20 회원국들의 성장전략 중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주요 성과로 꼽는 분위기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G20 구조개혁의 모범(exemplar)'으로 인정된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G20 회원국들은 각각 2018년까지의 성장전략을 제출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를 바탕으로 GDP 증가규모를 산출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행시 GDP 증가효과가 G20 국가 중 가장 큰 4.4%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밖에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16일 G20 제2세션에서 "자국 여건만을 고려한 선진국의 경제 및 통화정책은 신흥국에 부정적 파급효과(spillover)를 미치고, 이것이 다시 선진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역(逆)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 것에 대해 엔저(低) 현상을 지적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세계적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에 따른 엔저 현상이 우리나라 등 다른 나라의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회적으로 지적함으로써 국제회의에서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