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남북 간 화해 무드가 급격히 조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해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등 북한 서열 2~4위 최고위급 핵심 실세들이 우리 측을 깜짝 방문하면서다. 이들은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방문했다고 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 목적은 남북교류에 물꼬를 트겠다는 데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이날 우리 측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차 고위급 접촉을 개최하는데 합의하기도 했다. 대화를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남북관계에 작은 물꼬가 트인 셈이다.
◆“허심탄회하게 남북대화 한다면 풀지 못할 문제 없다는데 공감”
북한 김정은 정권의 최고 실세인 황병서 노동당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 북한 측 인사 11명은 지난 4일 오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우리측을 방문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고위 인사들은 이날 오전 9시 평양을 출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10시 10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도착 후 북한 선수단을 격려하고, 우리 측 관계자들과 오찬, 그리고 오후 7시 아시안게임 폐회식에 참석한 후 오후 10시께 북한으로 돌아갔다.
특히, 이들은 이날 낮 우리 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및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과 오찬을 겸한 회담을 갖고 이달 말 남북고위급 접촉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 임병철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남북대표단은 오늘 오후 2시부터 3시40분까지 인천 소재 한 식당에서 오찬을 겸한 회담을 가졌다”며 “오늘 회담에서 북측은 그동안 우리가 제안했던 제2차 남북고위급접촉을 10월말~11월초에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측은 2차 회담이라고 한 것은 앞으로 남북간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며 “고위급접촉 개최에 필요한 세부사항은 실무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통일부 관계자는 이날 오찬회담 내용과 관련해 “허심탄회하게 남북대화를 한다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데 공감했다”면서 “오늘 회담에선 구체적으로 의제에 대해 협의를 한 것은 아니고 앞으로 2차 고위급접촉이 열리면 현안을 협의해 해결하자는 얘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2차 고위급접촉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의 핵심 실세들이 이같이 대거 방문했겠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통일부에서는 2차 고위급접촉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더 이상의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이미 언론들은 비공개 회담에서 이보다 무게 있는 대화들이 오갔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또, 공식적 방문 목적이었던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직전 북한 고위급 인사들은 정홍원 국무총리와도 약 15분가량 회동했다.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북한이) 금메달 11개, 전부 36개로 7위에 오르는 등 큰 성과를 거두게 돼서 기쁘게 생각한다”며 “우리 국민들이 굉장히 박수를 많이 치고 손바닥이 닳도록 응원했는데 응원한 보람이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그러면서 “이번에 남북이 거둔 수확이 남북 교류-협력에도 이어져 봇물 터지는 성과가 나길 바란다”며 “남북이 축구에서 남녀가 사이좋게 우승을 했는데, 앞으로 축구로 남북간에 교류를 하게 되면 아주 멋있는 모양이 될 것 같다. 황 국장의 방문을 계기로 모두가 박수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에, 황병서 국장은 “(남측이) 우리를 잘 돌봐주고 환영해주고 해서 좋은 성적들이 났다”며 “(축구) 이 기세로 나가면 세계에서 아마 ‘패권지기’가 되겠다. 조선 민족이 세계 패권을 향해 앞으로 같이 나가자”고 화답했다.
한편, 이날 황병서 국장 등이 박근혜 대통령과 회동하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회동은 불발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들을 만날 용의가 있었지만, 북측 인사들이 시간 관계상 등의 어려움으로 회동이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에 “따뜻한 인사 전한다”
한편,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이번에 방문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서를 가지고 왔는지도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친서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일 오전 <KBS일요진단>에 출연해 친서는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다만, 류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의 인사를 대통령에게 전하는 따뜻한 인사의 말은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간단하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인사말 내용에 대해서는 “인사말이 길지 않았다. ‘따뜻한 인사를 전한다’는 말이었다”고 밝혔다.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논의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없었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류 장관은 “고위급접촉이 열리게 되면 여러 대화가 있을 수 있다”며 “대화의 형식이나 내용은 항상 열려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북한이 갑작스럽게 고위급 인사들을 보낸 이유에 대해서는 “남북관계가 워낙 막혀있어 풀기 위해 파격적인 사건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이 있었다”며 “막힌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북한 나름대로의 방식이 아닌가 그렇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측이 했던 표현과 말 속에 남북간 교류협력의 시작을 하는데 있어서 방향을 암시하는 식의 말이 많았다”며 “전달되지 않은 많은 대화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번 방문을 쉬운 분야부터 남북관계를 여는 작지만 의미 있는 출발로 삼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류 장관은 10월 말 또는 11월 초 개최하기로 합의한 제2차 고위급접촉과 관련해서는 “5.24조치 해제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DMZ평화공원, 북한 인도적 지원, 남북사회문화 교류, 북한 인권 등 사안이 많다”며 “하나씩 놓고 논의하는 단계는 아닌 듯하고 여러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논의할지 소통할 필요가 있는데, 2차 고위급 접촉에서 그런 것이 이뤄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류 장관은 “2차 고위급 접촉에선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해 작지만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국민들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특별한 방안을 북한과 협의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