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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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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Sir  with  LOVE>

나에게 골프를 지도하는 프로와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이나 얼굴을 대한다. 내 쪽에서  보면, 같이 살지 않는 사람 중에서는 제일 잦게 만나는 사람이다. 나도 지겨운데 사부 역시 질리고 물릴 것이다. 나는 그 지옥에서 벗어나 사부를 안 보고 사부의 잔소리도 안 듣는 천국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필드에  나갔다가 공이 좀 잘 맞았다 싶으면 탈출을 시도한다. 

“선생님, 드디어 하산의 날이 왔어요. 앞으론 망 안에서는 안 놀고 들에서만 놀겠어요. 수 년 동안 투자한 자금도 회수해야겠고... 팬들도 관리해야 하니까... 앞으로는 제 얼굴보기 힘들 거에요.”

이러면서 연습장 탈의실 옷장에 쑤셔 박아 두었던 헌신발이며 고린내 나는 신던 양말까지 챙겨가지고 나온다. 그런 나를 사부는 붙잡지 않는다. 니 마음대로 하시라이다. 하지만 달포도 못 버티고 다시 망 안으로 돌아온다. 

“팬 사인회 하시느라 바빠서 닭장은 영영 발 끊은 줄 알았는데, 누추한 곳엔 어인 왕림?”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더 애타게 찾았다는데, 다시 돌아온 제자에게 따뜻한 위로의 대사라도 읊어주면 좋으련만, 사부는 인정머리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다. 애물단지가 속 썩이려 재등장했구나 하는 표정이다. 

“강도를 당했어요. 지난번엔 파뿌리였는데.. 이번엔 완존히 양파뿌리... 그래도 내가 돌아올 곳은 정든 선생님에게 밖에 없잖아요.”

“한번 잘 맞았다고  꿈이여 다시 한 번을 외치면서 힘을 넣었군요. 좌우간 전 김작가하고 전혀 정들고 싶지 않은 걸요.”

겸손하게 굴라는 건가. 손오공처럼 한번 공중제비를 돌면 18000리를 난다는 근두운을 타고서 내가 오비말뚝 밖으로 휘젓고 다니는 걸 본 것인지, 첩자가 있어 고자질을 한 것인지 족집게 도사처럼 알기도 잘 안다. 사부의 몰인정에 대한 내 대응은 협박이다. 

“전요, 누구한테 골프를 배웠냐고 물으면 기탄없이 선생님 이름을 댈 건데요. 그렇게 긴 세월 레슨을 받고도 요모양 요꼴의 실력 밖에 안 되면 남들은 당연히 선생님의 가르치는 실력을 의심할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말씀인데요. 선생님은 선생님의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제 실력을 어느 만큼은 끌어 올려줘야 해요.”

얼토당토않은 궤변으로 남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짓은 타고난 나의 특기이다. 나는 드라이버는 슬라이스가 나고, 페어웨이 우드는 뒤땅을 치고, 어프로치 토핑이 모두 사부의 탓이라고 핑계를 댄다. 

“아, 머래도 상관없습니다. 김작가가  제 말 안 듣고 고집부리는 거야 근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김작가 같은 제자 가르치느라고 참 힘들겠다고 다들 절 동정하죠.”

사부는 들에서 열 받고 온 내게 펄펄 끓는 기름을 붓는다. 

“제가 어디 말을 안 듣고 싶어서 안 듣나요. 첫째로 머리가 나빠서 말귀를 못 알아먹죠. 둘째로 마음만 방년이지 몸은 불혹을 넘긴 터라 마음 따로 몸 따로 놀아서 그렇죠.”

“김작가 두 자리 숫자 아이큐는 저보다 나은 겁니다. 전 한자리 숫자 아이큐라도 골프에 관한 한 오늘날까지 버텨왔습니다. 그리고 60세 노인이 30세 장년을 이길 수 있는 스포츠는 골프뿐입니다.”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의 아웅다웅 싸움질만 하면서도 사제관계는 질기게 버텨왔다. 하긴 생쥐가 풀방구리 드나들듯 한 달이 멀다 하고 짐 싸서 하직하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고는 했지만. 

지난주에 사부와 필드레슨을 겸한 라운드를 했다.

찜통 속에 들어 앉은 듯 푹푹 찌는 더운 날씨였다. 성하(盛夏)의 나라인 필리핀에서도 태국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공을 쳐봤지만 이렇게 고된 노역은 아니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불쾌지수가 올해 들어 최고로 치솟는 것 같았다. 

세 홀도 마치기 전부터 찬물에 몸 담그고 시원한 생맥주 거품에 코 박고 들이키는 것, 그것만이 희망이었다. 남은 홀을 헤아리며 진군을 했다. 사부의 사부가 나타나서 설(說)을 푼다 해도 귓전에 도달하지 않을 만치 만사가 귀찮았다.

“백스윙 줄이세요. 하나 두울  셋까지 가지 말고 둘에서 다운스윙을 시작하라구요. 또 그 오버스윙...”

윗도리가 팔에 감겨 저절로 백스윙이 작아졌는데도 으르렁거린다. 나는 사부의 그 말을 백 번, 아니 천 번쯤 들었을 것이다. 레퍼토리를 다 꿰고 있어서 다음엔 무슨 가락이 흘러나올 지도 다 안다. 

“지금 체중 이동은 안하고 팔로만 쳤다고 그러려고 그러죠?”

공대가리를 치고 나니 미안하기까지 하다. 

“어깨를 돌리면서 공에서 멀어진다는 공포심을 이젠 버릴 때도 되었잖아요. 자신 있게 휘두르세요.”

“손목으로 엎어 쳤다고... 야단 칠 거죠?”

피그르르 굴러가는 공을 바라보며 나는 미리 자수를 해버린다.

‘골프 프로는 불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낙천적인 의사와 같다.’고 짐 비숍은 말했다. 

나는 낙천적인 의사를 갈구하는 불치병환자인가. 아니다. 나는 차라리 내게 소질이 없으니 놀이삼아 들에 나가 즐기라든지, 깨끗이 골프를 포기하라든지, 이런 충언을 해주는 프로를 원한다. 죽기 전에는 고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고 정직하게 일러주면, 실의에 빠질지라도 헛된 망상은 버리리라.  

사부는 날더러 말 안 듣는 악동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사부 말에 따르고자 노력한다. 그런대도 사부는 내가 내 맘대로 휘두른다고 한다.  

채 던지고 가고 싶다. 집에 가서 수박이나 깨먹고, 공도 미워하지 말고, 사부도 미워하지 말고, 못난 나도 미워하지 말자. 이제  파리똥 같은 기미만 생기는 골프는 작별하고 실내 헬스클럽에서 우아하게 역기나 들어올리고, 그동안 게을리 행했던 지적인 성숙을 위한 영어공부에 충실하자. 

자, 나의 마지막 라운드, 골프와의 영원한 이별을 위하여.......

정말 골프와 영영 하직할까 하는 번민도 잠시 했었다. 마지막인데 공이야 맞든 안 맞든 하란대로 따라서나 해보자, 사부의 소원이나 들어주자, 했다. 온몸을 비틀어 꼬아 올렸다가 냅다 풀어서 내리쳤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공이 저 혼자 살아서 비상하는 것이다. 공 내부에 컴퓨터 칩이라도 들어있는 양 잡는 클럽마다 정확한 탄도와 거리와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사부의 잔소리가 잠잠해졌다. 

“놀랬어요. 이제야 연습장 스윙이 필드에서도 나오는 군요. 어깨도 잘 돌아가고, 팔도 당차게 휘둘러주고. 이대로 접근한다면 내년 후반기, 빠르면 이맘 때 쯤은 싱글로 진입하겠네요.”

땀에 젖은 장갑을 뒤집어 뜯어내며 사부가 말했다. 5년 만에 처음들은 칭찬이다. 사부는 칭찬에 인색했다. 특히 내게는 더 그랬다. 그는 내게 헛말이래도 듣기 좋은 감언이설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랬으므로 나는 그 첫 칭찬에 감격했다. 

“홀컵의 지름이 얼마나 되는 지 아십니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단숨에 들이켠 생맥주 탓도 있지만, 덮쳐오는 잠의 너울을 걷어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사부의 잔소리는 달콤한 꿈마저 방해했다.  

“그걸 모를까 봐요? 4.2인치가 조금 넘는다고....”

“108밀리랍니다. 골프는 108번 번뇌하는 운동이라고 부처님이 그렇게 만드셨답니다.”

나는 아련한 꿈속에서 사부의 잠꼬대인지 잠언인지를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의 서류철을 뒤져서, 먼 훗날 아니 내년에 싱글타수를 기록하면 발표하려고 미리 써두었던 싱글 소감의 말미에, 사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To Sir with LOVE, 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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