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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신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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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고시절에 잠시 기숙사에 들어가 있었다.

이불보따리를 풀던, 첫날 저녁이었다. 환영회를 한다고 선배들이 나를 비롯한 신참들을 불렀다. 환영회를 한다는 방으로 내려가니 먼저 입사한 상급생, 동급생들이 방 가장자리에 빙 둘러 앉아있었다.  방 가운데는 한말들이 커다란 주전자와 대접, 새우깡 몇 봉지, 사과 몇 알이 놓여있었다. 환영회라는 이름에 걸맞지 앉게 분위기가 썰렁했다. 우리 신참들이 주눅이 들어 어정쩡하게 서있으려니 왕선배가 우리더러 주전자 옆에 앉으라 했다. 

“자, 기도 합시다.”

환영회는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성가도 부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까지 했다. 

이 즈음에서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 화기애애한 선후배의 상견례가 이루어 질 줄 알았다. 헌데 방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만 있었다. 

“우리 고참들이 너희들에게 주려고 과자하고 성당 뒷산에서  약수를 길어 왔으니 많이 먹도록 해라.”

실내는 바늘 하나만 떨어져도 들릴 만큼 조용한데, 기도를 주선한 선배가 냉면 그릇 같은 대접에 물을 가득 따라 주면서 명령했다. 선배들은 차례대로 대접을 채워서 신참들에게 건네었다. 도저히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그릇을 비울 때마다 선배들은 후배를 치하했다. 자신들이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힘들게 약수를 길어왔으므로 후배는 장기자랑으로 보답을 하라고 했다. 나는 앉아서 두 그릇, 서서 두 그릇, 화장실 다녀와서 두 그릇을 마셨다. 한 그릇을 비우고는 노래를 불렀고, 또 한 그릇을 비우고는 엉덩이로 이름을 썼고, 또 한 그릇을 비우고는 아마도 춤을 추었다고 기억한다.  

환영회가 끝나자 선배들은 우리를 기도실로 안내했다. 잠자리까지 돌봐주며 기숙사에 들어온 첫날밤은 기도실에서 자라고 했다. 성모님이 굽어보시는 방이므로, 향수병을 앓는 신참을 성모님이 돌봐주실 것이라고 했다. 

“이 기숙사는 6.25때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힌 곳이라고 들었다. 원혼들이 아직도 기숙사 근처에서 떠돌고 있다니, 화장실에 갈 때는 잊지 말고 성가를 불러야 한다. 성가 안 부르고 살금살금 내려오다 귀신한테 잡혀가도 우리는 모른다.”

이런 겁나는 말도 덧붙였다.

기도실은 기숙사 맨 꼭대기 층에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은 맨 아래층에만 있었다. 

우리 신참들은 목까지 차있는 물을 쏟아내느라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서워서  떨리는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갔다. 우리가 부르는 성가가 도화선이 되어 이 방 저 방에서는 까르르 깍깍 숨넘어가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입사 신고식이었다. 기숙사에 들어간 사람은 필히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 의식은 비밀스럽게, 기숙사가 생긴 이래로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 신고식이 어디든 있다. 군대에도, 감방에도, 동아리에도, 술집에도 있다.

골프에도 신고식이 있다. 

나는 내 친구들 중에서 비교적 골프를 일찍 배운 편이다. 그래서 친구의 머리 올리는 날도, 100타를 깨는 날도 우연찮게 동행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골퍼들이 기본기는 프로에게서 배운다. 그러나 룰이나 에티켓은 동반자들에게서 하나 둘씩 습득한다. 

나는 고참이므로 후배들의 에티켓오너를 자청했다. 

“골프장에는 로칼 룰이란 게 있어. 일테면 신호등보다 교통순경의 수신호가 우선하는 것처럼...”

친절한 목소리로 자상하게 설명했다.  친구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내 말이 먹힌다는 신호이다.  

“자, 첫 홀에서 누가 먼저 치느냐를, 옛날엔 여기 쇠막대기로 제비를 뽑아서 밤일낮장으로 정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여성골퍼에게는 아무도 못 건드리는 로컬룰이 따로 있어. 예쁜 여자부터 치는 거야.  못 믿겠으면 저기 칠판에 적힌 거 보고와. 그러니까 선희야 너부터 올라가.”

이제 겨우 9홀짜리 퍼블릭 코스를 두 번 돌았을 뿐인 친구는 못 믿겠다는 듯이 멈칫거리며 그냥 서 있었다.  

“그럼 돈 많은 사람 먼저 칠래, 아니면 살 많은 사람 먼저 칠래. 돈 많은 사람은 돈 자랑, 살 많은 사람은 살 자랑해봐.”

나는 혼자서 차 따먹고 포 따먹고 양쪽 사까지 넘보면서 후배의 혼을 뺐다. 

티 위에 놓인 공이나 페어웨이의 풀 위에 있는 공도 그린 위에서처럼 무조건 굴려주라고 배운 것인지, 아니면 아이스하키의 팩과 골프공을 구별 못하는 건지, 땅으로만 공을 밀고 가던 친구가 황소 뒷걸음질에 개구리 잡는 격으로 파3홀에서 버디를 했다.

“버디 축하한다. 근데 버디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캐디언니, 빨리 드라이버 빼줘. 버디한 사람은 드라이버를 마이크 삼아 버디송 부르는 거야. 캐디언니, 맞지?”

“그럼요.”

이런 순간 장단을 못 맞추는 캐디는 없다. 친구는 얼떨결에 ‘만남’을 불렀다. 

“이 연못 홀을 그냥 지나면 안돼.  연못에 공을 빠뜨리지 않게 잉어한테 고수레 해야 해. 빨리 과자 사와.”

친구는 잽싸게 뛰어가서 비스킷을 사왔다. 

“골프에는 얼마나 많은 에티켓이 있는 줄 아니? 입장할 때는 정장, 라운드할 때는 깃과 소매가 달린 셔츠를 입는 거야.  샷은 천천히 해도 걸음은 빨리하고, 벙커정리에 디봇자국 수리도 해야 해. 물고기를 키우는 연못에선 반드시 고기밥을 주어야 하지. 또 가다 보면 묘가 있는 곳도 있어. 거기선 골프하다 죽은 사람을 위한, 그리고 땅 속에서 골프공에 수없이 얻어터지고 짓밟힌 영혼을 위해서 묵념도 해야 해. 자아 묵념.”

가르치기로 들면 한도 끝도 없다. 탈의실에 들어와서도 나는 마구 잘난 체를 하며 후배를 길들였다. 

“너 오늘 그린 주위에서 이쪽 방카 저쪽 방카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했지? 이리와. 여기 냉탕에 세 번 온탕에 세 번 머리까지 푹 들어갔다 나와. 그렇게 살을 풀어내야 다음부턴 안하게 되거덩.”

욕탕에서 물먹이기 잠수까지 시키고 신고식 풀코스를 끝냈다. 아니 참 디저트가 남아있었다. 나는 거룩한 선배의 지도를 맨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걸 따끔하게 알려줬다. 그래야 그녀도 나중에 후배를 짱짱하게 가르칠 줄 아는 선배가 될 것이므로. 

나는 골프에 늦게 입문한 후배에게 선배 앞에서 술 석 잔을 노털카로 마시게 했다. 하지만 나는 너그러운 선배다. 강아지 목욕통만한 그릇에 술을 따르지는 않았다. 된장찌개 2인분용 뚝배기였다. 

다음에는 이 만만한 후배에게 골프공 한 개가 걸린 내기를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엔 스킨스와 라스베가스를, 그 다음엔 훗세인과 돼지꼬랑지도. 그래서 내가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하며 전수받은 골프기술과 내기비법을 가르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가 투자했던 수업료를 회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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