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21세기 비틀스’라 불리는 BTS는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에 이어 ‘핫 100’ 1위를 석권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탑 아티스트임을 거듭 입증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이 같은 한국 문화의 놀라운 역량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높은 곳을 향한 집단적 질주
저자는 한국이 ‘대중문화 공화국’이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주장한다. 식민통치의 상처에 신음하는, 땅 좁고 자원 없는 나라가 살 길은 근면과 경쟁뿐이었다.
한국은 그냥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선진국이 되는 것을 국가 종교로 삼은 나라가 아닌가. 그래서 택한 게 바로 ‘삶의 전쟁화’였다.
서열 체제는 완강하고, 그래서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집단적으로 질주하는 1극 집중의 ‘소용돌이’ 문화는 수시로 온 사회를 뒤흔든다. 그런 전쟁과 역동성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든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대중문화였다.
이 책은 한류의 역사를 1945년 해방 이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70여 년에 걸쳐 기록하고 탐구한다. K-pop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뮤지컬, 게임 등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담았다.
미국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최초의 한류 아이돌’ 김 시스터즈를 비롯해,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로 통하는 〈질투〉, 1997년 중국에 수출돼 ‘한류’라는 작명을 낳는데 영향을 미친 〈사랑이 뭐길래〉, ‘현대 K-pop의 시조’로 평가받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2003년 〈겨울연가〉 신드롬을 거쳐, 한국 영화 ‘1,000만 신드롬’, ‘소녀시대’ 전성시대,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싸이, BTS, 〈기생충〉 등 광범위한 한국 대중문화의 주요 현상과 사건들을 포착한다.
한국인의 삶 자체가 드라마다
이 책은 ‘한류’의 역사인 동시에 ‘한류론’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류를 둘러싸고 지난 20여 년간 축적된 주요 평가들도 동시에 소개한다는 뜻이다. 한류의 역사에는 한류의 그늘도 포함된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의 ‘힘의 논리’로 인한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 영화 제작 현장 스태프에 대한 차귀 구조, ‘장자연 사건’에서 드러난 소속 기획사가 자행한 술자리 접대와 성 상납 강요 등은 여전히 진행중인 문제들이다.
저자는 한류를 성공시킨 키워드를 10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뛰어난 혼종화·융합 역량과 체질, 둘째, 근대화 중간 단계의 이점과 ‘후발자의 이익’, 셋째, ‘한’과 ‘흥’의 문화적 역량, 넷째, ‘감정 발산 기질’과 ‘소용돌이 문화’, 다섯째, 해외 진출 욕구와 ‘위험을 무릅쓰는 문화’, 여섯째, ‘IT 강국’의 시너지 효과, 일곱째, 강한 성취 욕구와 평등 의식, 여덟째, 치열한 경쟁과 ‘코리안 드림’, 아홉째, 대중문화 인력의 우수성, 열째, 군사주의적 스파르타 훈련 등이다.
저자는 한국인의 삶 자체가 드라마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할 때 ‘드라마틱하다’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바로 이 말에 ‘드라마 공화국’의 답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바로 그 파란만장의 동의어가 ‘드라마’인 셈이다.
성공에 대한 열망과 판타지, 고통과 시련의 눈물,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근거라 할 혈통주의, 그러면서 착하게 산 자신을 위로하는 권선징악의 메시지, 이것들을 담아내 매일 제공하는 게 바로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