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물질의 어려움, 질병의 고통 등을 만나면 한탄하며 슬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기감정 속에서 슬퍼하는 육적인 애통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해도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혹자는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할 수 있지만 시련 중에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구원받고 천국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아뢰면 문제를 해결받을 것을 믿기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팔복의 말씀 중 두 번째 복은 ‘애통하는 자는 자의 복’입니다. 여기서 애통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애통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회개의 애통이 있습니다. 처음 주님을 영접해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깨닫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통회자복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애통이지요. 그런데 회개의 애통을 하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때 죄를 회개하며 불같이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을 때에도 회개의 애통을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장사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주인에게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무서운 책망을 들었습니다. 자신은 사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 감당했는지, 혹여 나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부족한 것이 발견되면 회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믿음의 형제가 사망의 길로 갈 때 사랑으로 애통합니다. 이는 나를 위한 애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애통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슬피 울며 따르던 여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말씀하셨습니다(눅 23:28).
우리 주변에 범죄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믿음의 형제를 볼 때 불쌍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그를 대신해 회개하며, 그가 진리로 행할 수 있도록 애통의 눈물로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영혼 구원을 위한 애통이 있습니다. 가족, 일가친척, 이웃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면 그들의 구원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멸망으로 가는 무수한 영혼들을 위해 애통해야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애통을 하는 사람에게 위로해 주십니다. 죄를 버리기 위해 마음을 찢고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며,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가는 만큼 사도 바울과 같이 권능도 나타낼 수 있도록 축복하십니다. 또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여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는 전도의 열매, 부흥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등 각 사람에 맞게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슬픔으로 인한 육적인 애통이 아니라 영적인 애통을 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4) 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