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스페인 독감 대유행병을 다룬 대중역사서다. 평범한 군인들, 특별할 것 없는 시민들, 그리고 봉사정신으로 나섰던 간호사들과 사명감 하나로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의사들을 비추면서 당대 사람들이 재앙을 어떻게 견뎠는지 조망한다.
진원지의 오명을 쓰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7년, 겨울이 끝을 보일 무렵에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군인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군 의료진들은 막연한 결론만 내렸을 뿐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1918년 전 세계에서 1억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은 그렇게 전쟁의 포화로 엉망진창이 된 유럽의 상처를 파고들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희생된 사람은 어림잡아 3천800만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감염자 가운데 10~20퍼센트를 죽인 스페인 독감은 발생한 지 첫 25주 안에만 2천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역사가들로부터 ‘흑사병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역사상 가장 큰 의학적 대학살’이라고 불린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 치명적인 대유행병에 ‘스페인 독감’이란 별칭을 붙인 것이 정확히 누구, 또는 어떤 매체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에서는 신문들이 적극적으로 이 질병과 관련한 소식을 다뤘다. 전시 언론 검열 탓에 공포나 절망감을 조장하는 소식을 실을 수 없었던 연합국 매체들은 스페인발 기사를 옮기기 시작했고, 어느 틈엔가 이 병을 스페인 독감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의 헌신
스페인 국왕뿐만 아니라, 영국의 총리와 미국의 대통령도 이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되는 루스벨트는 미 해군부 차관 시절 감염돼 한 달 넘게 병과 싸웠다. 마하트마 간디는 종교적 신념을 거스르며 염소젖을 먹고 회복할 수 있었다.
소년 존 스타인벡은 갈비뼈 몇 개를 제거하고 늑막의 고름을 빼내는 모험적인 치료로 살아날 수 있었지만, 평생 폐 때문에 고생을 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구급차 운전병으로 입대한 월트 디즈니는 이 병에 걸린 뒤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토마스 울프는 어린 시절 형 벤자민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을 소설 〈천사여, 고향을 보라〉에 담아냈다.
이 같은 유명인의 일화들도 등장하지만, 이 책의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의료진들은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끔찍한 바이러스에 맞서 헌신, 말 그대로 몸을 던졌다. 저명한 바이러스학자이자 스페인 독감 전문가인 존 옥스퍼드 교수는 그런 헌신을 “보통 사람들의 작고 일상적이면서도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규정하면서 “1918년에는 영웅적인 행동이 서부 전선보다 가정 전선에서 더 많이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마스크’는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이미 100여 년 전에 사람들은 마스크를 대유행병 시기 효과적인 예방 도구로 신봉하고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예로 들더라도, 도시 전체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이를 어긴 사람에게는 ‘치안방해죄’를 적용, 벌금이나 구류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페리 선착장 같은 데서 ‘깜빡 잊고 안 쓰고 나왔다’는 사람을 위해 판매대를 설치했다.
이 책은 코로나 시대에 인류가 지녀야 할 덕목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다. 전문가의 충고처럼,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면서 인류와 언제든지 전쟁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